서울에 사는 A씨(60)는 지난해 말 아들에게 아파트 한 채를 사줄 계획을 세웠다. 대학원 졸업을 앞둔 아들이 분가를 원해서다. 때마침 정부가 세제개편안을 통해 과표구간별로 10~50%인 상속 · 증여세를 2009년 7~34%로 낮춘다는 방침을 발표하면서 세금 부담도 덜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부자감세' 논란으로 여야가 상속 · 증여세율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방향을 틀면서 계획을 접었다.

올해 증여세 수입이 대폭 줄었다. 지난해 정부가 낸 상속 · 증여세율을 낮추는 세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1년째 통과되지 못하면서 증여를 미루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8일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 9월 말까지 증여세 수입은 8100억원에 그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1조3000억원)의 61.5%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계획한 연간 세수 목표치 달성에도 비상이 걸렸다. 지난해의 경우 9월까지 연간 증여세수 목표(1조6000억원)의 82.5%를 징수했지만 올해는 연간 세수목표(2조2000억~2조2500억원) 대비 37.8%만 거둬들인 상태다.

증여세와 달리 상속세는 지난해와 비슷한 실적을 올렸다. 올해 9월 말까지 상속세 수입은 51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5400억원과 별 차이가 없었다. 재정부 관계자는 "상속과 달리 증여는 시기조절이 가능하다"며 "증여 행위가 그만큼 줄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정부 원안대로 올해 상속 · 증여세율이 낮아졌다고 가정하면 2억원을 증여할 경우 내야할 세금은 2400만원에서 1190만원으로 줄어든다. 3억원 증여시 세 부담도 4400만원에서 1890만원으로 경감된다.

재정부 관계자는 "언젠가 세율 인하가 되리라는 기대심리가 작용해 증여를 미루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이런 추세라면 내년에도 증여세 수입이 급감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자감세에 따른 세수 부족을 우려해 국회가 법안 처리를 미루고 있는 상황이 역설적으로 세수 감소를 가져온 셈이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