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조선시장의 절대 강자로 군림해온 한국 조선산업이 남아 있는 일감인 수주잔량 기준으로 중국에 세계 1위 자리를 내줬다. 2000년 일본을 추월하며 정상에 오른 지 근 10년 만이다. 업계는 그러나 고부가가치 선박건조 기술과 납기 준수 등에서는 중국의 실력이 아직 한국에 훨씬 못미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작년 하반기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급속히 위축된 글로벌 대형 선박 발주가 재개될 경우 한국 조선업계의 1위 재탈환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뚝 끊긴 대형 수주

6일 국제 조선 · 해운시황 분석기관인 클락슨에 따르면 이달 초 기준으로 중국의 수주잔량은 5496만218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로 5362만6578CGT를 기록한 한국을 처음으로 추월했다. 중국의 선박 수주잔량 점유율은 34.7%로 한국(33.8%)보다 1%포인트가량 앞섰다. 수주잔량은 전체 수주량에서 인도한 물량을 뺀 것으로,조선산업의 역량을 평가하는 통상적인 기준으로 통한다. 신규 수주량에서도 중국은 올 들어 지난달 말까지 270만CGT(52.3%)를 확보,164만CGT(31.8%)에 머문 한국을 따돌렸다.

근 10년간 수주잔량에서 1위를 지켜온 한국 조선산업이 중국에 추격을 당한 것은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대형 선박 발주가 끊긴 탓이다. 컨테이너선,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건조에 주력해 온 국내 조선업계의 수주량은 급격히 줄어든 반면,중국 조선업계는 저가 전략을 앞세워 중 · 소형 벌크선 등을 꾸준히 수주해 왔다.

중국 내 해운사의 발주 물량이 대부분 자국 조선사에 집중된 탓도 있다. 중국보다 앞선 건조 시스템을 가진 한국 조선업계의 건조 속도가 중국보다 빠르고 인도량이 많아지면서 상대적으로 잔량이 줄어든 측면도 있다. 지난달 말까지 인도량에서는 한국이 1281만CGT로 중국(879만CGT)을 크게 앞서고 있는 상태다.

◆'차이나 머니' 앞세워 저가 수주 싹쓸이

중국 정부의 파격적인 선박금융 지원은 한국 조선업계의 수주경쟁력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중국은 최근 국영 수출입은행이 선박 12척을 발주한 이란 국영 해운사인 NITC사에 선가의 90%에 달하는 규모의 선박금융 지원을 약속하면서 물량을 싹쓸이했을 정도다.

중국 정부가 조선산업 육성을 통해 2015년까지 세계 1위에 오르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제시하면서 국내 조선업계의 긴장감은 더 높아지고 있다. 한국 수출산업 최고의 '달러 박스'로 꼽혀온 조선업계는 글로벌 경기 침체와 함께 중국의 추격으로 세계 1위의 아성이 흔들리고 있어서다. 업계 관계자는 "예전처럼 대형 선박 발주량이 크게 늘어나지 않는 한,양적인 면에서 중국과의 경쟁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선박 건조량 및 생산시스템 면을 고려할 때 위기로 받아들일 단계는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조선협회 관계자는 "한국 조선산업 기술력의 80% 수준에 근접한 중국에 양적인 면에서 추격을 허용한 것은 분명 신경이 쓰이는 대목"이라면서도 "중국 조선업계는 선박 건조 과정에서 품질과 기술 경쟁력의 척도로 꼽히는 '납기일 준수'가 안 될 정도로 격차를 보이고 있어,현실적인 위기감을 느낄 단계는 아니다"고 말했다.

장창민/박민제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