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 싱가포르나 홍콩 같은 글로벌 금융허브가 되려면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수준의 금융기업이 생겨야 합니다. "

6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2009 서울국제금융컨퍼런스'에 참석한 제프리 가튼 전 미국 예일대 경영대학원 원장(63 · 사진)은 이날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안에서만 영업하는 은행으로는 금융산업을 발전시킬 수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가튼 전 원장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존 은행을 합병하는 방식으로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같은 초국적 금융기업을 만들어야 한다"며 "대형 은행을 만들기 위해 대기업이 은행을 소유하도록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덧붙였다.

'금융위기 이후 국제금융도시,서울'을 주제로 열린 이번 컨퍼런스에는 가튼 전 원장 외에도 도미니크 바튼 맥킨지&컴퍼니 글로벌 회장,진동수 금융위원장 등 국내외 금융 전문가 400여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서울의 금융허브로서의 발전 가능성은 높게 평가하면서도 세제나 언어 문제를 시급히 개선해야 할 점으로 지적했다.

바튼 회장은 '금융중심지로서 서울의 과제'라는 주제의 기조연설을 통해 "세계 금융의 중심지는 뉴욕과 런던에서 싱가포르와 홍콩 상하이 서울 등 아시아로 옮겨오고 있다"며 "한국은 경제 규모가 크고 내수가 안정된 데다 고도화된 금융산업 등이 강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세제와 언어장벽이 있고 규제가 일관성 없게 이뤄지는 점 등은 한국의 단점"이라며 "글로벌 기업 유치를 위해 노동 유연성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앞으로 늘어날 중동국가와의 교역에서 한국이 어떤 이익을 취할 수 있을지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가튼 전 원장은 글로벌 금융허브를 위한 대형 은행의 필요성엔 공감하면서도 무분별한 대형화에 대해서는 경계하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또 "은행을 크게 만들기 위해 산업자본을 끌어들이면 부실 위험성이 높아진다"며 "만약 기업이 은행을 소유하게 된다면 철저히 독립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튼 전 원장은 이를 위해 내년 11월 한국에서 개최될 G20 정상회의에서 은행의 규모와 국가에 따라 자기자본 비율을 달리 하는 등 규제를 차별화하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컨퍼런스 주최자인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서울을 국제금융 도시로 만들기 위해 외국인 학교 및 병원 건립 허용,지방세 감면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진 위원장은 "영국 싱가포르 등 주요 금융허브 국가들은 위기 이후를 대비한 새로운 전략을 마련해 추진 중"이라며 "우리도 위기 이후 금융 환경 변화를 감안해 우리 실정에 맞는 금융중심지 육성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철 기자 eesang6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