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고채 발행시장에 소리없는 변혁이 일어났다.

국고채 금리는 회사채 등 채권시장의 지표금리 역할을 하기 때문에 국고채가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그만큼 국고채 시장의 효율적 작동이 중요하다는 뜻이지만 국고채 발행을 담당한 기획재정부에는 남모를 고민이 있었다.

국고채 발행시장이 두 가지 측면에서 비정상적 상황이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첫째, 국고채 응찰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2004년 199%였던 응찰률은 2006년 162%, 2008년 132%로 떨어졌다가 올해는 4월까지 126%로 하락했다.

확장적 재정운용에 소요되는 재원 마련 등을 위해 올해 85조 원의 국고채 발행계획을 세운 정부로선 응찰률 하락은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2006~2008년 한국의 국고채 응찰률은 143%로 미국(243%), 영국(204%), 일본(269%) 등 선진국에 비해서도 낮았다.

또다른 문제점은 국고채 발행가격이 유통가격과 같거나 더 비싸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투자자(PD)들이 시장에서 유통되는 국고채와 같거나 더 비싼 가격으로 발행 국채를 산다는 뜻이다.

도매가격이 소매가격보다 비싼 기현상이 생긴 것이다.

정부는 이런 상황이 국고채 낙찰방식에서 비롯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종래에는 단일가격 낙찰방식이 적용됐다.

이 방식은 입찰시 높은 가격을 써낸 PD가 있더라도 발행물량을 채울 수 있는 가장 낮은 가격을 써낸 PD가 제시한 가격으로 채권이 배정된다.

예를 들어 A PD가 100원에 채권을 사겠다고 입찰하더라도 B PD가 95원을 써냈을 경우 두 PD 모두에게 95원에 판매하는 방식이다.

이는 PD들이 채권을 낙찰받기 위해 자신들이 예상하는 최저 낙찰가격에 입찰하는 것이 아니라 이보다 더 높은 가격을 써내는 비정상적 행태를 유발했다.

비록 높은 가격을 써냈다고 하더라도 채권 매입은 이 가격이 아니라 최저 낙찰가격으로 가능했기 때문이다.

물량 확보를 위해서는 높은 가격으로 써내는 것이 더욱 안전한 전략이었던 것이다.

결국 PD들이 앞다퉈 높은 가격으로 입찰에 참여하면서 낙찰가격이 유통가격보다 더 비싼 경우도 많이 발생했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PD들의 발행시장 참여도를 떨어뜨리고 응찰률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악순환이 생겼다.

이때 정부가 고안한 것이 차등가격낙찰제도다.

PD들이 서로 다른 가격에 채권을 낙찰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변경한 것이다.

이 제도하에서 PD들은 자신이 써낸 가격대에서 낙찰받을 수 있다.

예컨대 100원에 매입하겠다고 한 PD에게는 100원에 팔고, 95원에 매입하겠다는 PD에게는 95원에 판매하는 방식이다.

다시 말해 종래에는 다른 PD들과 같은 가격으로만 살 수 있었지만 이제는 어떤 가격을 써내느냐에 따라 더 싸게도, 비싸게도 살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정부의 제도 변경에 대한 PD들의 반응은 달갑지 않았다.

PD 간 낙찰가격이 서로 달라지기 때문에 자신의 성과가 곧바로 드러나고 낙찰가격을 맞추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불 보듯 뻔했다.

정부로서도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시장이 반대하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했다가 실패라도 할 경우 시장 혼선의 책임을 고스란히 져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6월 새 제도 도입 방침을 발표하고 8월 모의 입찰과정을 거쳐 9월부터 변경된 제도를 시행했다.

결과는 예상 외로 좋았다.

우선 응찰률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

올해 1~8월 평균 응찰률은 131%였으나 제도가 시행된 이후인 9~10월 응찰률은 229%로 높아졌다.

11월 응찰률은 350% 가까이 올라섰다.

PD당 평균 응찰금액도 7월 4천4천63억 원, 8월 4천687억 원이던 것이 9월 5천878억 원, 10월 5천958억 원으로 높아졌다.

도매가격이 소매가격보다 비싼 비정상적 구조도 개선됐다.

제도 변경 이후 낙찰가격이 유통가격보다 평균적으로 더 낮아진 것이다.

이로 인해 낙찰가격이 높을 경우 PD들이 이익을 내기 위해 더 비싼 가격으로 채권을 판매, 결국 채권 가격을 높이는 악순환의 꼬리를 끊었다는 게 재정부의 설명이다.

이 작업을 주도한 최규연 국고국장은 4일 "9월부터 금리가 전반적으로 상승하는 악조건 속에 제도가 시행됐는데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며 "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되면 유통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류지복 기자 jbry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