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 회복은 미국 경제의 정상화 시기에 달려 있으며 적어도 내년까지는 완전한 회복을 이야기하기 힘들 것이다. "(마틴 펠드스타인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 "아니다. 아시아 국가들이 지금과 같은 회복세를 보여준다면 세계경제의 정상화는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더 빨리 나타날 수 있다. "(프레드 버그스텐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소장)

'경제위기 이후 출구전략'이란 주제로 4일 열린 좌담회에 참석한 두 석학은 세계경제 회복 시기를 결정하는 변수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제시했다. 두 석학과 황웨이핑 전 중국 런민대 경제대학원 원장,김인준 한국경제학회장이 함께한 이날 좌담회는 단연 관심의 초점이었다. 좌담회의 주제가 '출구전략'이었지만 이들은 먼저 세계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해결책에 대해 의견을 쏟아냈다. 좌담회는 세계경제의 잠재적인 위험요소와 미ㆍ중 간무역 불균형 해소 등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었다. 사회는 김인준 회장이 맡았다.

▼김 회장=이번 금융위기의 성격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유동성 위기 혹은 금융시스템의 문제점 등 여러 가지 진단들이 나오고 있다.

▼버그스텐=이번 경제위기는 미국의 경제공황 이후 가장 큰 규모의 경기침체를 가져왔다. 사람들은 미국발 금융위기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전 세계 국가들에 책임이 있다. 미국에 자산 거품이 생긴 것은 약(弱)달러로 인해 전 세계의 유동성이 미국으로 흘러들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아시아권 국가들은 엄청난 무역흑자를 맛볼 수 있었다.

▼황웨이핑=교역의 불균형 문제와 비슷한 맥락이다. 중국은 전 세계의 생산공장이고 미국은 이를 소비해준다. 두 나라의 무역 불균형이 결국은 이번 위기를 초래한 중대 원인 중 하나가 됐다. 남들보다 뒤늦게 경제성장에 도전한 나라라면 내수보다는 수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버그스텐=회복의 모습이 V자가 될지 U자가 될지는 결국 이 위기가 다 지난 다음에야 알 수 있는 문제다. 분명한 것은 이 위기가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중국은 꽤 좋은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회복이 예상보다 늦어진다 하더라도 지금의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의 회복세가 유지된다면 적어도 더블딥은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펠드스타인=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다행히 이번 금융위기는 중국의 수출 의존도를 낮추는 계기로 작용했다. 자연히 중국 내수도 촉진시킬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아시아 경제는 미국과 서유럽의 경제가 얼마나 빨리 회복되느냐에 달려 있다. 당장 내년에 세계경제가 정상화될 것이라고 보진 않는다. 아시아 국가들의 회복세가 뚜렷하기는 하지만 세계경제를 이끌기에는 이들의 역량이 아직 부족하다.

▼김 회장=현재의 회복세에서 어떤 것이 잠재적인 위험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나?

▼펠드스타인=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되긴 했지만 여전히 미국 경제는 시한폭탄과 같은 위험 요인들을 갖고 있다. 물론 미국의 3분기 성장률(3.5%)이 예상보다 높게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정부의 경기부양 조치 덕분이다. 하지만 실업률은 여전히 9%를 훨씬 웃돌고 있으며 상업용 부동산 문제도 언제 표면화될지 모른다. 추가적인 경기부양 정책이 필요하긴 하지만 사상 최대 규모인 재정적자로 섣불리 시행하기 힘들다.

▼황웨이핑=그렇기 때문에 중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내수 시장을 되도록 빨리 확대해야 한다. 미국 경제가 침체돼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수출주도형 국가들이 물건을 내다 팔 시장의 규모가 줄었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김 회장=전 세계적으로 출구전략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펠드스타인=각자의 이해관계가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어느 한 국가가 주도적으로 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주요 20개국(G20)이 더욱 중요하다. 각 나라들은 출구전략의 시기와 규모를 모두 다르게 시행할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상호 간의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분명한 것은 섣불리 출구전략을 썼다간 위기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 장기 불황의 원인도 섣부른 금리 인상에 있다는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다.

▼버그스텐=공조를 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각국이 처한 상황이 모두 다르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쉽게 이뤄질 것으로 보진 않는다. 실제 이스라엘을 시작으로 호주와 노르웨이 등이 금리를 이미 올렸다. 선제적인 금리 인상과 대출 규제 강화로 주식 · 부동산시장 과열과 인플레이션 등 부작용을 막겠다는 구상인데 한국도 다른 국가들이 잇따라 금리를 인상할 수 있다는 점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김 회장=아시아 국가들에선 국제통화기금(IMF)의 역할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이 나오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심지어 IMF 대신 아시아통화기금(AMF)을 설립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버그스텐=아시아권 나라뿐 아니라 어느 국가라도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아시아에서 금융위기가 재발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며 지역의 경제여건은 건실한 수준이다.

▼황웨이핑=나는 AMF가 필요하다고 본다. 아시아 국가들은 적어도 지금보다는 달러 의존도를 줄여야 외환위기에 대한 방어벽을 튼튼히 쌓을 수 있으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AMF 구축이다.

▼김 회장=이번 금융위기로 G20의 위상이 올라갔다. 신흥국과 개도국 그리고 선진국들이 요즘만큼 강력한 공조 체제를 이룬 적도 없다. 하지만 비상 상황이 지나고 어느 정도 회복이 가시화하니까 각국마다 자신들이 처한 경제 상황에 따라 G20에서 의논하고자 하는 아젠다도 달라지고 있다.

▼버그스텐=대표적인 것이 환율 문제다. G20이 강조한 '글로벌 균형성장'을 위해선 중국 위안화 가치를 끌어올리는 환율 조정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환율 문제가 미국과 중국 간에 워낙 민감한 이슈다보니 중국의 반대로 지난번 회의 테이블에 올려지지 않았다. 기후변화 협약도 진전이 없었다.

▼김 회장=세계적인 환율 재조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미국이 경상수지 적자에 시달리고 있지만 중국은 지나친 흑자를 누리고 있지 않은가.

▼버그스텐=G20 회의에서도 글로벌 불균형 해소가 향후 주요 과제로 채택됐다. 중국이 수출해 무역흑자를 쌓고 미국은 빚을 내 수입하는 불균형으로는 세계경제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기 힘들다. 때문에 세계 각국이 중국에 위안화 절상 압력을 넣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황웨이핑=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위안화가 앞으로 강세를 띨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통화정책을 결정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특히 글로벌 시장 회복과 함께 자본 유입이 늘고 미국 달러화가 약세를 나타내면 위안화 절상 기대는 높아지고,이 결과 핫머니를 비롯한 엄청난 국제 자본이 중국으로 회귀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

▶▶ 패널 소개

▼마틴 펠드스타인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70)=오바마 정부 경제회복위원회 위원으로 미국 정부 경제정책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미국 최고 경제연구소인 전미경제연구소 소장을 20년 가까이 맡아왔다.

▼프레드 버그스텐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소장(68)=국제경제와 통상 분야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경제학자.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12개 주요 신문의 인용 빈도 수가 가장 많을 만큼 영향력이 있다.

▼황웨이핑 전(前) 런민대 경제대학원 원장(58)=석사와 박사학위 모두 런민대에서 딴 중국의 대표적인 국내파 학자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을 비롯한 중국 최고 지도부와 가깝다.

▼김인준 한국경제학회장(61)=서울대 상대 출신으로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 경제학부에서 국제금융론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