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제일은행 노조가 본점 로비에서 열흘째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남다르다. 임금협상이나 단체협상에서 노사 충돌이 발생해서도 아니고,낙하산 인사가 이뤄져서도 아니다. 영업목표를 과도하게 할당했다는 것이 노조 시위의 이유다. 퇴진 요구 대상도 행장이 아니라 영업담당 부행장이다.

노조는 모 부행장 퇴임 시위를 하는 이유로 '전 영업점에 예금 펀드 대출 카드 등에 대한 모집 할당량을 과도하게 내려보냈다'고 밝혔다. 노조 관계자는 "지점별로 영업 실적을 전년 대비 100~200% 늘리라고 주문했다"며 "해당 부행장 퇴임 서명운동에 영업점의 80% 이상이 참여했다"고 말했다.

영업실적을 두 배 이상 늘리라는 것이 무리가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동감하고 있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이 상품 모집 캠페인을 하지만 통상 20~30% 늘리는 선에서 정해주고 있으며 경기가 좋을 때도 50%를 넘기진 않는다"고 말했다.

SC제일은행 노조 게시판에는 무리한 영업목표 할당을 비난하는 행원들의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한 행원은 "본점에서 내려보낸 캠페인 대상 고객 명단에 70,80대 노인들까지 포함돼 있다"며 "60세가 넘은 사람들에게는 나이가 많다며 신용대출을 안 해주면서 펀드에 가입하라고 권유하는 게 맞는 것인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측이 제시하는 영업 목표를 문제 삼아 노조가 퇴진 시위를 벌이는 것은 지나치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직원들에게 판매 목표를 할당하고 독려하는 것은 일종의 경영 행위이기 때문이다. 영업망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외국계 은행이 행원들에게 더 많은 일을 하라고 다그치는 것은 불가피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사례가 SC제일은행에서만 발생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모 은행에서 얼마 전 '만능청약통장'이라 불리는 주택청약종합저축 상품을 직원들에게 할당해 판매를 독려한 적이 있는데,노조가 이를 문제 삼아 판매거부 운동을 벌이겠다고 해서 시끄러웠던 적이 있다. 은행원 임금이 너무 많다는 여론이 여전한 상황에서 노조가 일하기 싫어 반대운동을 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은 노조에도 결코 바람직한 게 아니다.

이태훈 경제부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