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털녀’는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쭉 있었지만, 사람들이 ‘겨털녀’를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100년이 채 안된다.

바로 여성들, 그것도 미국 여성들이 상업광고의 영향으로 1915년경부터 면도기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역설적으로 ‘겨털녀’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전에는 당연히 겨드랑이 털은 자연스런 존재로 ‘제거’라는 특별 대접을 받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테레사 리오단에 따르면 1차 대전 이전까진 겨드랑이 털은 미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의복구조상 털이 난 겨드랑이를 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내실이었는데 그곳에선 겨드랑이 털을 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 그렇지만 수영복의 보급과 일상 패션에서 노출이 늘면서 일부 상류층 여성들이 겨드랑이 털을 미는 유행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작업을 위해 여성들은 일회용 면도날을 넣은 안전 면도기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때마침 면도기 회사 질레트는 새로운 여성용 제품인 ‘마이 레이디’면도기를 선보이며 이런 유행을 주도했다.

당시 질레트 광고는 겨드랑이 털을 노골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토가처럼 생긴 드레스를 입은 모델이 머리위로 팔을 들어 올려 털을 제거한 매끈한 겨드랑이를 자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한다.

이어 대대적인 겨드랑이 캠페인이 시작됐다. 질레트는 상류층 잡지인 ‘하퍼즈 바자’지에 거의 4년동안이나 지속적으로 “겨드랑이 털을 밀어야 한다”는 광고전을 시작했다.

이 기간동안 제모에 관한 광고중 72%는 겨드랑이를 겨냥한 것이었다고 한다. 또 질레트 영업부서는 마이레이디 면도기가 “팜비치,버지니아 온천,기타 휴양지에서 자발적인 잦은 요청이 쇄도한 끝에 나오게 됐다”라는 얘기를 강조하라고 지시받았다고 한다. 당시는 아직 빅토리아 시대의 점잖은 분위기가 남아있던 탓에 털 이야기를 직접 끄내긴 민망했던 시절. 이에 따라 질레트사는 영업사원들에게 ‘면도’라는 말을 사용하지 말고 “매끈하게 한다”라는 말을 쓰도록 교육시켰다.

사실 질레트는 마이레이디가 “매끈한 겨드랑이를 얻기 위한 가장 안전하고 위생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했지만 이 제품은 남성용 면도기보다 크기만 약간 작을 뿐 거의 차이가 없는 제품이었다.

이에 따라 역사가들은 질레트가 여성을 상대로 한 새 시장을 스스로 열었는지,아니면 소비자의 강력한 수요에 반응한 것인지는 불분명한 점이 많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바로 마이레이디 모델이 질레트의 사업을 순식간에 급성장시켰다는 점이다. 질레트는 마이레이디가 본격 판매되기 시작한 1916년 78만2000여개의 면도기를 팔았는데 이는 여성용 제품이 갖춰지지 않았던 2년전 판매 수치보다 두배나 높은 것이었다. 이어 1917년엔 면도기 판매량이 1백만개를 넘어섰다.

이어 겨드랑이를 면도하는 습관을 대중이 완전히 받아들이는 데는 그로부터 약 5년 정도가 걸렸다고 한다.1922년이 되면 미국의 유통거인 시어즈 로벅 카탈로그에는 얼굴,목,팔 이외의 부분의 털을 없애는 데 사용하라고 제모 용도의 제품들을 소매가 비치는 드레스와 함께 소개되기에 이른다.

결론적으로 여성들은 20세기 들어 여러 상업적 목적으로 새로 창출된 새로운 문화와 규범으로 인해 가글링을 해서 구취를 방지하고, 천 대신 종이로 만든 생리대를 사용하고, 두루마리 화장지를 구입해 집안을 위생적으로 가꾸고, 데오드란트를 사용해서 체취를 제거하도록 권유받았다는 게 테레사 리오단의 분석이다.

질레트가 여성제모 시장이라는 새시장을 창출하며 매출을 두배 이상 키운지 백여년이 흘렀다. 오늘날 나의 소비는 어떤 회사들이, 어떻게 창출한 시장인 것일까. 문득 세면대 위에 놓인 면도기를 바라보다 면도기와 관련한 블루오션의 역사가 떠올라 기록을 정리해 봤다.


<참고한 책>
테레사 리오단, 아름다움의 발명, 오혜경 옮김, 마고북스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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