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지리자동차가 포드의 스웨덴 브랜드 '볼보' 인수를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인수 금액은 20억달러에 약간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콩 증시에 상장된 지리의 시가총액은 30억위안(4억3000만달러)이다. 지리는 중국의 은행들이 자금을 댈 것이라고 밝혔다. 지리는 지난달 골드만삭스로부터 3억3400만달러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 기업에 의한 가장 야심찬 세계화 행보"라고 평가했다. 지리에 앞서 중장비업체인 쓰촨텅중은 GM 산하 브랜드 '허머' 인수에 합의했다.


◆중국 자동차 세계화의 주역

중국 자동차업계가 글로벌 경제위기를 기회로 세계 자동차 산업 전면으로 나서면서 중국 자동차 세계화의 주역들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불과 10년 전 창업한 회사로 82년 된 유럽 자동차 회사를 사들이게 된 리수푸 지리차 회장은 중국에서 '자동차의 미치광이(汽車 狂人)'로 불린다. 그는 19세 때 사진가게를 열어 처음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폐기물에서 금을 분리하는 사업에 손을 댄 데 이어 냉장고에서 오토바이,1998년 자동차 생산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창업 행보를 계속했다. "4개의 바퀴 위에 소파를 얹는다고 자동차가 아니다"는 주위의 만류도 그를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3년 전 런던 명물택시 블랙캡을 생산하는 망가니스 브론즈를 사들인 데 이어 올해 호주 변속기업체 DSI를 인수하는 등 글로벌 행보도 계속했다.

베이징자동차의 왕다쭝 사장은 GM에서 20년 이상 잔뼈가 굵은 해외통이다. 지난해 베이징자동차에 합류한 그는 GM의 스웨덴 브랜드 '사브'를 인수한 컨소시엄에 자금을 대는 아이디어를 내 사브 기술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았다. "자동차기업이 생존을 원하다면 해외로 나가 더욱 커져야 한다"고 외치는 그는 이미 미국의 디트로이트 등지에서 온 해외파 30여명으로 자신의 팀을 꾸렸다.

치루이자동차의 인퉁야오 회장은 중국에서 '민족 브랜드의 기수'로 통한다. 외국사와의 합작을 거부하고 독자 브랜드만을 생산해왔기 때문이다. 2001년 시리아에 차를 첫 수출한 인 회장은 2년 만에 치루이를 중국 최대 승용차 수출업체로 키워냈다. 지난해 13만5000대를 20여개국에 공급했다. 치루이의 해외 생산기지는 이란 이집트 러시아 우루과이 태국 우크라이나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8개국에 이른다.

BYD의 왕촨푸 회장은 중국 전기자동차의 선두 주자로 꼽힌다. 지난해 워런 버핏의 투자를 받아 주목을 받은 그는 지난해 말 세계 처음으로 플러그인 전기차를 선보인 데 이어 내년에 미국 시장에서 전기차를 시판한다는 포부도 밝히고 있다. 그는 최근 영국 투자은행 바클레이즈로부터 25억홍콩달러(3865억원)를 추가 투자받기도 했다.

완강 중국 과학기술부장(장관)도 중국차 세계화의 주역으로 꼽힌다. 독일 클라우스탈공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하이브리드카 전문가로 이미 2000년에 신에너지 자동차 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정부 측에 제언했으며 전기차 개발을 위한 국가 프로젝트 책임자로 영입됐다. "전기차가 중국에 자동차 선진국을 추월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지재권이 걸림돌

하지만 중국 자동차업계의 앞날이 탄탄대로만은 아니다. 당장 볼보의 협력업체들은 지리차가 볼보에 납품하는 부품의 불법 복제 방지를 약속하지 않으면 납품을 거부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고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했다. 월지는 포드와 지리차가 볼보의 기술이전 등 지식재산권 문제에 대해 아직 합의를 보지 못했다며 양사가 협상 마감시한을 두지 않았다고 전했다. 지재권 문제는 지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베이징자동차에 취업한 전 포드차 직원은 기밀유출 혐의로 현재 미국에서 체포돼 조사를 받고 있다. 상하이자동차도 쌍용차 인수 이후 기술유출 논란에 휘말렸다.

그럼에도 위기에 처한 해외 자동차업체들이 중국 기업의 러브콜을 외면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올 들어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 자동차 시장으로 올라서면서 중국을 기사회생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GM이 미국 공장 문을 닫으면서도 최근 이치자동차와 상용차 합작법인을 출범시킨 게 대표적이다. 이에 따라 올해 미국 일본에 이어 자동차 생산 1000만대 클럽에 가입한 중국이 2020년에는 2000만대의 자동차를 생산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오광진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