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이 국가 · 도시브랜드 분야의 최고 권위자인 사이먼 안홀트 '안홀트-GMI창립자'를 지난 27일 서울시장 집무실에서 만났다. 서울의 브랜드 이미지와 가치를 높이려는 오 시장이 전문가에게 길을 물은 것이다. 할 말이 많은 듯 두 사람은 예정보다 한 시간이나 넘게 대담을 가졌다. 안홀트는 29일 서울 한남동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제9회 서울국제경제자문단(SIBAC)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SIBAC는 서울을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지로 도약시키려는 서울시가 세계적인 경영자들로부터 정책자문을 받기 위해 2001년 설립한 시장 자문기구다. 대담을 정리했다.


▷오세훈 시장=대한민국 정부는 한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려 애쓰고 있습니다. 올해 초 만든 '국가브랜드위원회'는 그 출발점입니다. 서울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지방자치단체들도 도시를 알리기 위해 축제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잇따라 내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선 광고나 홍보만으론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이먼 안홀트=많은 국가와 도시들이 홍보에 거액을 쏟아붓고 있지만 성공한 곳은 거의 없습니다. 이미지를 결정하는 것은 홍보활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엔 국가와 도시에 내재된 매력이 결정적인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로마와 파리 같은 도시가 유명한 것은 세계인들이 '그곳에 꼭 가보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홍보를 잘했다는 것은 부차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도시와 국가는 자신만의 독특한 매력,즉 다른 곳과 비교되는 '경쟁적 정체성(Competetive Identity)'을 만들어야 합니다. 서울의 경쟁적 정체성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 시장=저도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저는 도시 자체의 독특한 내실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가끔 도시 브랜드에 대한 강연을 합니다. 그때마다 저는 브랜드 창출의 제1원칙은 명실상부에 있다라고 말합니다. 브랜드 마케팅의 성공은 포장술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전달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이지요. 품질이 C급인 제품을 A급이라고 선전하면 소비자들은 현혹돼 한 번은 삽니다. 그러나 다시는 그 제품을 사지 않습니다. 도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홍보에 솔깃해 한 번은 오겠지만 보고 실망하면 다시는 찾지 않을 것입니다.

▷안홀트=한국은 매우 독특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한류의 영향으로 이웃 국가는 한국을 매우 긍정적으로 봅니다. 하지만 동남아시아를 벗어나면 대다수 국가는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또 많은 사람들은 북한과 한국(남한)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좋은 코리아'와 '나쁜 코리아'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이것이 한국인지 북한인지는 모릅니다. 또 한국인은 겸손이 미덕이라고 배우고 자란 탓에 자신의 장점을 자랑하고 소문내는 일에는 매우 서툽니다.

▷오 시장=남북 분단은 큰 약점입니다. 하지만 서울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긍정적인 요소가 정말 많습니다. 먼저 안전한 도시라는 겁니다. 밤 11시 남산 산책코스에서 호젓하게 데이트를 즐길 수 있습니다. 이런 도시는 정말 드뭅니다. 서울은 역사도시이기도 합니다. 수도 역사가 600년이나 됩니다. 도시의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는 녹지공간과 수변공간도 자랑거리입니다. 도시 중심에 4개의 산,외곽에 4개의 산을 가진 곳은 전 세계에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한강은 물론 중랑천 안양천 탄천 같은 지천도 30여개가 있습니다. 도시디자인을 통해 남산과 한강을 친환경적으로 만들어 시민들에게 돌려주려는 시의 노력도 도시브랜드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서울시의 도시브랜드 제고 노력으로 2007년 44위에 머물던 안홀트-GMI 도시브랜드 순위가 작년엔 33위로 급상승하기도 했습니다. 아직은 미흡하지만 말입니다.

▷안홀트=서울의 도시 브랜드 순위가 33위라고 해서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도시마다 이룬 성과가 다른데도 일괄적인 기준을 적용하다 보면 저평가받는 곳도 생길 수 있습니다. 순위를 좌우하는 지표들 중 일부는 서구 도시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서울시는 좀 더 현실적이고 세분화된 목표를 설정해야 합니다. 서울이 갑자기 10위권으로 뛰어오르기는 힘들겠지만 특정 계층의 사람들에게 5년 안에 인지도를 5% 높이는 식의 세분화된 목표를 세운다면 장기적으론 충분히 가능합니다.

▷오 시장=1~2년 투자해서 도시 브랜드를 단번에 상위권에 올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서울시도 순식간에 순위가 상승할 것이라고 기대하진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브랜드 가치를 시민들이 인식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겁니다. 유명인들이 적극 나서 서울의 존재를 알리는 것도 필요합니다. 중국의 국민감독인 첸카이 거,일본의 존경받는 소설가 무라카미 류,유럽에도 잘 알려진 미국의 음악가 조지 윈스턴 같은 분들을 등장시켜 서울의 호감도를 끌어올렸습니다.

▷안홀트=무엇보다 외국인이 편하게 찾아올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합니다. 국제 소통어인 영어가 자유롭게 사용되고 관광이나 사업하기에 불편함이 없어야 합니다. 높은 수준의 대학과 국제학교도 곳곳에 설치돼야 합니다. 이런 것들은 삶의 질과도 연관되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환경에 대한 인식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오 시장=환경 측면에서는 큰 진전이 있었습니다. 서울시는 수돗물(아리수)을 그냥 마셔도 되는 몇 안되는 도시 중 하나입니다. 미세먼지 농도가 매우 높았는데 이제는 맑은 날엔 남산에서 인천 앞바다가 보이는 경우가 흔해졌습니다. 버스의 90%를 천연가스 엔진으로 바꾸는 등 대기질 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다. 교육 문제는 아쉬운 점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굉장한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보통 외국 도시의 경우 시가 외국 학교에 토지를 제공하는데 그칩니다. 하지만 서울시는 고품질의 콘텐츠를 가진 유수의 국제학교엔 건물까지 지어주고 있습니다.

▷안홀트=브랜드 가치를 상승시키려면 국가와 도시,기업(민간)이 조화롭게 하나의 목표를 향해 노력해야 합니다. 다양한 목적 간의 조율도 매우 중요합니다. 관광과 투자 유치 간의 조율,문화와 비즈니스 간의 조율 등이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합니다. 나폴레옹은 "작은 규모의 군대가 큰 규모의 군대를 이기는 방법은 모두의 발걸음을 맞추는 것"이라 했습니다.

▷오 시장=삼성 현대자동차 LG 등의 브랜드 가치는 국가브랜드 가치보다 높습니다. 그만큼 국가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기업의 역할과 비중이 커졌다는 것입니다. 기업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전제돼야 하겠지만 국가홍보에 있어서도 민간의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외국 주요 도시에 나가보면 삼성과 LG의 광고판이 도배되다시피하고 있습니다. 이젠 기업들이 광고판 한구석이라도 한국 기업이라는 표시를 해줬으면 합니다. 국제 사회에서 대한민국보다 호감도가 높은 초우량 기업들이 이런 제안에 호응해 준다면 '코리아'브랜드는 단시간 내에 커다란 부가가치를 갖게 될 겁니다.

▷안홀트=삼성이나 LG제품에'메이드인 스파클링 코리아(Made in Sparkling Korea)'라는 말을 집어 넣어도 기업에 해를 미치지는 않을 것같습니다. 물론 시장님의 말씀처럼 기업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전제돼야 합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홍보를 위해 사람들을 공략하는 비결은 간단하고 단순합니다. 저는 매력적인 장소나 투자처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6살 테스트'를 합니다. 6살짜리 아이가 알 수 있도록 어떻게 하면 잘 설명할 수 있을까라는 거지요. 이것은 대중의 수준을 얕잡아 보고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단순하지만 보다 강력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정리=김태철/이재철 기자 eesang6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