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신부가 신혼집을 보여준다며 친구들을 데리고 와 한 방의 문을 연다.안에는 화려한 조명 아래 구두가 가득 들어 있다.감탄하는 여성들 뒤로 갑자기 남성들의 자지러지는 비명소리가 들린다.같은 시간 신랑이 공개한 ‘비밀의 방’은 100% 초록색 하이네켄으로 가득 찬 큰 냉장실이다.남성들은 펄쩍펄쩍 뛰고 눈물을 흘리며 감격한다.

유명한 미국드라마 ‘섹스앤더시티’를 패러디한 하이네켄의 최신 맥주광고다.구두로 가득한 방이 여자의 로망이라면 ‘남자의 로망은 하이네켄’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맥주 회사인 하이네켄은 종종 좋은 광고회사처럼 다가온다.이 회사는 프리미엄 맥주 이미지를 진지하기보다 유머러스하게 잘 전달한다.주요 광고대회에서 강력한 대상후보작으로 오르내리는 이유다.이번 ‘냉장고 안으로 걸어들어가기(Walk in fridge)’ 광고는 칸광고제 은상을 받았다.대체 어떻게 직원들을 관리하길래 매번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광고를 만드는 걸까?

시릴 차자트 하이네켄 글로벌마케팅 담당 이사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본사에서 기자와 만나 “명예를 얻고 싶은 직원들의 욕구를 자극하는 것이 비법”이라고 밝혔다.하이네켄 현지법인들은 시장에 맞는 광고를 스스로 제작할 수도 있고 이번 섹스앤더시티 패러디 버전처럼 잘 만든 광고를 가져다 쓸 수도 있다.이렇게 되면 자연스레 ‘잘 팔리는’ 광고를 만들기 위한 혈전이 벌어진다.런던·뉴욕·암스테르담·홍콩 등 각 지역의 광고담당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내부 경쟁을 벌이는 시스템이다.

만약 한 직원이 굉장히 훌륭하고 재기 넘치는 광고를 만들었다면 내부 포털사이트를 통해 순식간에 각 지사에서 “가져다 쓰겠다”는 연락이 온다.아이디어를 낸 직원은 자신이 만든 광고를 들고 세계 각국 지사를 누비며 프리젠테이션을 할 수 있다.업무의 연장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광고쟁이’들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명예다.차자트 이사는 “현지법인에 똑같은 광고를 쓰도록 요청하거나,잘 만들었다고 생각되는 광고를 보고 배우도록 하지 않는다”며 “다만 직원들의 열정과 야망을 건드려서 좋은 광고가 살아남도록 할 뿐”이라고 밝혔다.

그는 “예컨대 이번 ‘냉장고 안으로 걸어들어가기’ 광고는 암스테르담 지역을 담당하는 법인에서 제작했는데 발표 후 며칠만에 유튜브 등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에서 방송됐다”고 설명했다.

하이네켄이 이같은 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이유는 맥주라는 단일 시장,20대 남성이라는 단일 고객층을 대상으로 광고가 제작되기 때문이다.차자트 이사는 “우리는 20~25세 남자들은 다 똑같다는 전제 하에,모두에게 공통적으로 호소할 수 있는 부분을 건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1873년 네덜란드에 설립된 하이네켄은 전 세계에 5만6000여명 직원을 보유하고 있다.지난해 매출은 143억1900만유로로 전년 대비 27.3%,순익은 10억1300만유로로 전년 대비 9.5% 성장했다.

암스테르담(네덜란드)=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