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와 스타에 한정됐던 한류 붐이 이제는 한글과 가요,김치와 한식 등 생활문화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여행도 단순한 구경 차원에서 벗어나 한국문화를 직접 체험하는 '참여형'으로 바뀌고 있어요. "

도쿄에서 만난 이홍 한류발전협의회장(사진)은 일본의 한류가 심화 단계로 들어서고 있다고 말한다. 광고 · 컨설팅 업체 C&C 대표인 이 회장은 1987년 OB맥주 도쿄지사 주재원으로 파견된 이후 1997년 한국 콘텐츠를 방송하는 KNTV 창설에 참여하는 등 한류 붐을 일으킨 일등공신이다.

그가 이끄는 한류발전협의회는 2005년 일본에 있는 한국문화원과 콘텐츠진흥원 관광공사 KBS MBC SBS재팬 오리콘 어뮤즈 등 양국 기관과 업체 관계자 42명이 한류 활성화를 목표로 만든 민간 단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최근 일본에서 주최한 가요 콘테스트가 9년 만에 전국 대회로 격상됐습니다. 500명 이상의 일본인이 참가했고 하토야마 총리의 부인인 미유키 여사가 본선에 참가해 스스로 '한류팬'이라고 얘기했죠.한국 문화를 즐기는 일본인들이 늘고 있다는 증거지요. "

일본에서 '동방신기'와 '빅뱅'의 인기는 1990년대 '김연자' 등 엔카 가수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고 그는 말했다. '난타'와 부채춤 등 한국 공연의 팬들도 크게 늘었고 드라마 역시 '겨울연가' 등 멜로 위주에서 '주몽''태왕사신기''대장금' 등 사극으로 번지고 있다. 이 때문에 팬 연령 층도 40~50대 아줌마 일색에서 20대 여성과 중년 남성으로 확산되고 있다.

"일본인들은 '구치코미'(입소문)로 정보를 받아들이며 충성도가 강한 게 특징입니다. 서서히 움직이지만 일단 무언가에 빠지면 오랫동안 즐기죠.이들에게 한류란 곧 '한국의 재발견'이에요. 정치와 경제 후진국으로 한국을 보던 데서 아름다운 자연과 맛있는 음식,멋진 문화를 가진 나라로 다시 보는 거죠.가령 '김치'에 대한 인식도 '냄새난다'>'맛있다'에서 '맛있다'>'냄새난다'로 바뀌고 있는 겁니다. "

그는 특히 '한국 음식의 재발견'이 돋보인다고 평가했다. 한국 드라마에서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자 따라하는 일본인들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

최근 도쿄 신주쿠 거리에는 불판을 내놓고 떡볶이를 판매하는 식당까지 생겼다. 매 주말 신주쿠의 한국장터는 일본 사람들로 북적인다. 일본인이 한식당을 개업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최근 슈퍼마켓에 북어와 다시다가 동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니혼TV가 한국 동안(童顔)대회에서 입상한 양선화씨를 초청해 젊음의 비결을 물었는데 그가 '다시다를 넣고 북어국을 5년 간 끓여 먹었다'고 말한 다음 날이었지요. 이 같은 열기에 힘입어 대형 한식당들은 일본 아줌마들을 대상으로 김치 비빔밥 감자탕 순대국 삼계탕 등의 요리 강좌를 늘리고 있습니다. "

그는 "한글 배우기 열기도 뜨겁다"고 말했다. 한국어 과목을 개설한 일본 고교가 1999년 131개에서 2005년 286개로 늘었고,올해에는 300개교를 웃돌 것으로 추산된다. 일본인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한국어 능력 검정 시험 응시생도 1993년 2010명에서 올해 1만2000명으로 늘었다.

이 회장은 "콘텐츠 리서치회사인 오리콘에 한국 음식과 관광 정보 등을 모은 '한류DB' 구축을 요청해 놓은 상태"라며 "앞으로 김치 만들기와 한국어 스피치 대회 등을 전국 콘테스트로 치르는 방안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도쿄=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