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원하는 정책자금을 받기 위해 서류를 제출할 경우 공장 유무나 공장 규모를 꼭 기입해야 할 정도로 현행 지원 프로그램은 제조업 위주로 시행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고 만져볼 수 없는 컴퓨터 프로그램이나 콘텐츠 사업을 하는 여성 기업인들은 서류 준비부터 난감할 때가 비일비재하다. "(최정숙 포커스리서치 대표)

"정부는 지식서비스 업종을 지원하겠다는 말을 되풀이하는데 공장이 없으면 정부 지원 프로그램의 검토 대상에 포함되기 어렵다. IT,지식서비스에 공장이 왜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기업들은 지원 요건을 갖추기 위해 연구소 옆 33㎡짜리 공간에 '무늬만 공장'을 만들어 서류를 작성하는 등 웃지 못할 일도 일어난다. "(박명하 엠에스테크 대표)

한국여성벤처협회(회장 배희숙)와 한국경제신문은 여성 창업 육성과 여성기업 활성화를 목적으로 공동 기획한 '국가대표' 여성 기업인 시리즈를 마치며 최근 서울 서초동 협회 사무실에서 난상토론을 가졌다. 이날 토론회에는 최정숙 부회장,최계희 지식서비스분과위원장(알코 대표),박명하 생활환경분과위원장,김성희 IT컴퓨터분과위원장(건다감플러스 대표)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우선 정부가 나서 여성기업에 강점이 있는 IT,지식서비스 산업 분야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대상 기업 선정 방식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명하 위원장은 "최근 정부가 첨단기술이 필요한 친환경 녹색산업 분야만 지원 대상으로 중시하면서 나머지는 소외되고 있다"며 "녹색산업과 크게 관련이 없는 생활용품업에 진출한 여성 기업인들이 많다는 점을 감안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정숙 부회장은 "디자인,컨설팅,문화콘텐츠 등 지식서비스 분야는 여성기업의 비중이 높다"며 "그렇지만 국내 총 연구개발 자금 중 10% 정도만 지식서비스 분야에 배정될 정도로 정부의 모든 프로그램은 제조업에 치우쳐 있다"고 꼬집었다.

여성 기업인들은 육아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여성이 사회적으로 성공하기가 힘든 만큼 탁아소 건립 등 실질적인 지원책이 나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성희 위원장은 "여성들이 남성보다 일에 대한 욕심이 많아 여직원을 더 많이 뽑고 싶지만 육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그렇게 못하고 있다"며 "정부나 지자체가 아파트형 공장이나 공단 등 기업체가 몰려 있는 지역에 탁아소를 많이 만들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계희 위원장도 "7년 넘게 함께 일해온 한 여직원이 보육 문제 해결이 안 돼 결국 회사를 그만두는 것을 보고 사내에 탁아소를 갖추려고 3년간 노동부,여성부,지자체를 찾아가 봤지만 결국 포기했다"며 "여성들이 마음놓고 직장에 다닐 수도 없는 마당에 여성에게 창업하라고 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참석자들은 여성 창업이 성공하려면 철저한 준비가 요구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김성희 위원장은 "창업 10년 후 기업 존속률이 30%도 안 되는 현실에서 막 학교를 졸업한 여학생들에게 창업을 권유하는 것은 '실패'라는 무덤으로 몰아넣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학교에서 창업동아리 활동을 장려하고 정부나 유관기관에서는 체계적인 창업교육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등 최소 3년간 경험을 쌓도록 해야만 실패가 적다"고 주장했다.

박명하 위원장도 "딸에게 사업을 물려주고 싶지만 주변에선 '왜 그 고생을 시키느냐'는 의견이 대부분일 정도로 여성 창업에 대한 인식은 아직 부정적"이라며 "여대생들이 졸업 후 창업에 뛰어들 수 있도록 창업을 위한 경험과 지원제도 등 사전 지식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계희 위원장은 "취업난이 날로 심해지면서 무작정 취업을 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창업하는 편이 오히려 비전이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중소 · 벤처기업 지원 정책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최계희 위원장은 "여성 CEO들은 인적 네트워크 부족으로 유용한 정보를 얻기가 어렵다"며 "정부 인증 제도인 벤처 확인과 이노비즈 인증을 따내는 경우가 전체 여성기업의 4%도 안 되는 만큼 정부가 지원 정책을 적극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여성' 경영자로서 겪는 애로도 털어놨다. 최정숙 부회장은 "남자에 비해 체력이 약해 밤늦게까지 술자리를 갖기가 어려워 남성들보다는 인맥을 쌓기가 어렵다"며 "게다가 술을 많이 마시면 술 많이 먹는 여자라고 흉보기까지 한다"고 토로했다.

박명하 위원장은 "제품이나 서비스가 괜찮은데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설명도 없이 거래관계를 끊어버리는 상황도 종종 생긴다"며 "남성 중심의 사회인지라 대출받을 때 남편 보증까지 받도록 하는 등 여성 기업인을 무시하는 사회적 편견과 싸우는 것이 힘들다"고 말했다.

정리=임기훈 기자 shagg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