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사진)이 한국 중국 등 주요 아시아 국가의 수출 주도형 성장정책은 국제 무역과 자본흐름의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지난달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피츠버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세계경제 불균형을 해소하자고 주장한 데 이어 내놓은 미국의 질서재편론 후속타다.

버냉키 의장은 미국 캘리포니아 샌타바버라에서 열린 아시아와 국제금융위기를 주제로 한 FRB 컨퍼런스에서 "아시아 국가들은 1990년대 외환위기 때 해외 자본의 유출을 경험한 까닭에 수출주도형 정책을 강화해 경상수지 흑자를 키우고 외환보유액을 쌓아왔다"면서 "그러나 지나친 수출 의존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시아 국가들이 경쟁적으로 통화를 절하해 무역수지 흑자를 늘리고 있는 데 대한 경고를 날린 셈이다.

그는 구체적으로 국내 저축과 수출상품에 대한 인위적인 인센티브 정책으로 이룩한 무역흑자가 국내산업과 자원 배분의 왜곡을 가져와 장기적으로 자국민의 수요를 제대로 충족할 수 없는 경제가 된다고 설명했다. 대신 "균형 잡히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룩하기 위해선 무역흑자를 내고 있는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이 저축과 투자 간 격차를 줄이고 내수를 늘리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력히 요구했다. 이런 조치들은 국내 소비를 진작시키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버냉키 의장은 또 아시아 경제가 세계경제 회복을 주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올해 초 많은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가 자유 낙하하는 모습을 보여 빠른 회복이 어려울 것으로 여겨졌지만 최근 경제지표들을 보면 강력한 반등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버냉키 의장은 외환시장 개방성이 높은 한국의 경우 이번 금융위기 때 해외자금이 대거 빠져나가 가장 심각한 타격을 입은 국가 가운데 하나였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의 원화 가치가 2008년 초부터 지난 3월의 저점까지 달러화 대비 40%나 떨어졌다가 한국은행과 FRB의 통화스와프 및 세계경제 회복으로 부분적으로 회복됐다"고 말했다.

버냉키 의장은 미국의 재정 건전성과 달러 신뢰도도 언급했다. 그는 "미국이 저축률을 높일 필요가 있다"면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미국 정부가 재정적자를 축소하겠다는 분명한 선언을 통해 유지가능한 재정의 방향성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장기적으로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는 것은 미국 경제와 달러화에 대한 전 세계 투자자들의 믿음을 유지하는 데도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