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오전 7시께 제주 서귀포항과 맞닿아 있는 서귀포수협 공판장.밤새 바다에서 낚시로 갓 잡아올린 싱싱한 은빛 갈치들이 공판장 입구에 수북이 쌓인다. 수협 경매사가 '삐익~' 호루라기를 불며 경매 시작을 알리자 중매인들과 수협 직원들이 빙 둘러싼다. 경매사가 "중(中)자,47㎏부터"라고 외치기 무섭게 중매인들이 '21,4--'(21만4000원),'21,8--' 등의 숫자를 적어 내민다.

경매에서 사들인 갈치는 즉시 공판장 내 작업장으로 보내진다. 얼음물 통에 넣어 씻고,일일이 전자저울로 달아 500g 이상인 왕갈치만 따로 모은다. 왕갈치는 '서귀포새벽 으뜸 은갈치'라는 상표가 찍힌 비닐포장에 담겨 얼음팩과 함께 10마리씩 스티로폼 상자에 실린다. 나머지는 크기별로 10㎏짜리 상자로 들어간다.

갈치 상자들은 냉장탑차에 차곡차곡 실어 오후에 페리를 타고 목포항이나 여수 녹동항에 내려 대구,여주 등지의 이마트 물류센터로 보내진다. 물류센터는 이튿날 오전 7시30분까지 전국 이마트 매장으로 갈치를 배송한다. 새벽 서귀포 앞바다에서 건져올린 싱싱한 은갈치가 다음 날 오전이면 매장에 깔려 소비자들의 식탁에 오르는 것이다.

대형마트와 농어민 간 직거래가 생산자 · 유통업체 · 소비자의 '3자 윈-윈' 모델로 각광받고 있다. 농어민은 판로를 보장받고,대형마트는 싱싱하고 신뢰할 수 있는 상품을 확보하며,소비자는 싼 값에 사먹을 수 있기 때문.

서귀포수협은 이마트의 제의로 2003년 8월부터 이 같은 방식의 직거래를 시작했다. 이마트가 생산자단체와 시작한 최초의 직거래다. 그 이전엔 공판장에서 어민과 중매인을 중개해 주고 경매수수료를 받는 '위판' 업무가 고작이었다. 현상철 서귀포수협 상무는 "위판만으로는 어획량을 제대로 소화할 수 없었고,직접 판매(유통사업)도 미미해 재고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마트에 납품하면서 어민 소득이 늘고 유통사업 경쟁력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서귀포수협의 직거래 규모는 2005년 95억원에서 지난해 143억원으로 매년 10~20% 늘어 유통사업 매출의 70~80%를 차지한다. 그 덕에 만성 적자에서 2004년 흑자로 전환,해마다 2000여명의 조합원에게 배당을 해주고 있다. 또 어촌계 시설 개선 등에도 10억원 넘게 지원했고 올 5월에는 지역경제 활성화 공로로 산업포장을 받기도 했다. 최정호 서귀포수협 조합장은 "대부분 어촌들이 생산 부진으로 어선 수가 줄었지만 서귀포는 직거래 활성화로 20t 이상 어선이 2005년 57척에서 현재 77척으로 늘었다"고 설명했다.

서귀포수협은 2004년 '서귀포수협사람들'이란 브랜드도 만들었다. 이마트는 인기 상품인 '서귀포새벽 으뜸 은갈치'를 올 추석 시즌에 5마리씩 포장한 선물세트로 1500개를 준비했지만 모두 매진됐다. 윤종경 이마트 수산 바이어는 "서귀포수협은 철저한 품질관리,상품 개발,안정적인 공급으로 이마트의 선어(鮮魚) 부문 경쟁력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강조했다.

제주감귤협동조합도 2007년부터 이마트와 직거래를 시작한 이후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 현정훈 조합 유통사업소 팀장은 "2007년 45억원,지난해 105억원어치를 납품했는데 대형마트의 까다로운 품질 기준에 맞추느라 생산시스템이 개선되고 무엇보다 안정적인 판로 확보로 농가 소득이 안정된 것이 최대 장점"이라고 말했다.

서귀포=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