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더 떨어질 곳이 없습니다. "

김영신 한국소비자원 원장이 지난 14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소비자원이 처한 상황을 작심한 듯 토로했다. 소비자 보호 업무를 총괄하는 소비자원은 지난 6월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최하위 등급을 받았다. 전임 원장은 해임 건의 대상으로 지목받자 바로 사표를 내고 떠나 석 달 가까이 원장 자리가 공석이었다.

여기에 또 악재가 터졌다. 한나라당 의원 21명이 '금융소비자보호원(가칭)' 설립에 관한 입법안을 발의한 것이다. 금융감독원,공정거래위원회,소비자원 등에 나눠져 있는 금융소비자 보호 업무를 금융소비자원으로 모으자는 취지다.

침묵하던 소비자원이 발끈하고 나섰다. 김 원장은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심을 갖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금융기관 출연 재원을 토대로 금융소비자원을 설립한다면 소비자 시각이 아닌 사업자 시각에서 업무를 처리할 우려가 있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소비자원의 '속앓이'는 또 있다. 금융소비자원 신설안의 대표 발의자가 소비자원을 관장하는 국회 정무위원회의 김영선 위원장이다. 내년 예산 배정 등이 걸려 있는 터라 대놓고 반대하기가 껄끄럽다. 그럼에도 공개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낸 것은 그만큼 사정이 절박했기 때문이다.

소비자원은 업무의 중요성이 커진 것과 달리 예산,인력 등에선 열악한 게 사실이다. 1977년 설립 당시에 비해 정부 예산은 16배 커졌지만 소비자원 예산(253억원)은 고작 3배 늘었을 뿐이다. 소비자 상담건수도 14배 급증한 반면 인력(246명)은 설립 때보다 되레 10명 줄었다. 김 원장이 "20여년간 소비자 보호 업무의 노하우가 있어 새로 기관을 설립하는 비용의 일부라도 예산으로 지원해 준다면 큰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하소연할 만하다. 상급기관인 공정위나 금감원도 금융소비자원 설립에는 부정적이어서 입법안이 그대로 통과될지 현재로선 미지수다.

소비자원은 새 원장을 맞아 조직을 추스르고 환골탈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소비자상담 통합 네트워크 가동,80개 생필품 가격 공개,리콜조치 활성화 등 야심찬 계획도 내놓았다. 소비자 보호란 명분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지만 엇비슷한 기관이 새로 생긴다면 소비자원의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김정은 생활경제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