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오후 10시 비상대기 중이던 한국거래소(KRX) 해외사업추진단에 국제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베트남 호찌민 증권거래소 관계자였다. 그는 들뜬 목소리로 "축하한다. 한국으로 결정났다"고 말했다. 베트남 증권거래소가 발주한 차세대 정보기술(IT) 시스템 구축 국제경쟁 입찰에서 KRX가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됐다는 통보였다. 전화를 받은 해외사업추진단 직원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350억원짜리 베트남 거래소 IT 시스템 구축 사업은 KRX가 준비해온 해외 프로젝트 중 최대 규모다. 하지만 규모보다 더 관심인 것은 같이 경쟁에 참여한 세계 1,2위 거래소인 NYSE-Euronext와 나스닥-OMX를 모두 제치고 거둔 쾌거라는 점이다. 신평호 해외사업추진단 부장은 "한국 자본시장의 성공사례를 해외에 수출해 국격을 드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수주 성공은 KRX가 10년 이상 베트남 증시 발전을 위해 공들인 결과물이다. KRX는 1996년 증시에 대한 개념도 없던 베트남에 진출,증시 개설 모든 과정을 기초 단계부터 무상으로 컨설팅했다. 이를 바탕으로 2000년 호찌민에 '한국형 증권거래소'가 설립됐다. 짠 닥신 호찌민 증권거래소 이사장은 "이번 입찰에서 태국은 한국의 절반 가격에,대만은 심지어 공짜로 시스템을 깔아준다고 제안했지만 10년 이상 지속적으로 협력 관계를 맺어온 한국을 선택했다"며 "한국의 도움이 없었으면 지금의 베트남 거래소는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한국의 경제발전 노하우를 전수해 개도국의 발전을 돕는 '경제 한류'가 국가 브랜드를 높이는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대중문화에 대한 열광에서 불기 시작한 한류 바람이 이제 경제 한류로 본격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베트남은 한국 경제발전 모델을 그대로 이식해 성공을 거둔 대표적인 국가다. 다음 주 이명박 대통령의 베트남과 캄보디아 방문은 경제 한류 바람을 확산시키는 촉매 작용을 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기대하고 있다.

베트남뿐 아니다. 인도네시아 우즈베키스탄 등 아시아 국가들은 물론 알제리 모잠비크 등 중동 · 아프리카,도미니카 등 남미에서도 한국의 경제발전 경험을 전수해 달라는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개도국 고위 관료들을 초청해 진행하는 KSP(경제발전 경험 공유사업) 연수 프로그램에는 최근 5년간 1000여명의 공무원들이 다녀갔다.

어윤대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은 "경제 한류가 단기적인 이익 추구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상대국과 상생하는 방향으로 가야 국가의 품격을 높이는 효과를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호찌민(베트남)=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