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에 대한 낙관론이 쏟아져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잠재 불안 요인은 남아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현재의 한국 경제는 죽어가는 환자를 '확장적 재정정책'이라는 단기처방으로 기사회생시켜 놓은 단계일 뿐 건강한 체질로 탈바꿈하기에는 아직 멀었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고용시장은 정부 일자리 사업이 끝나는 하반기에 더욱 악화될 것으로 예측되며,정부의 재정 투입 여력은 바닥을 보이지만 민간투자는 여전히 바통을 이어받을 기미가 없다. 부동산 시장 불안 가능성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다가오는 고용시장 혹한기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이력' 보고서에서 1970년대 이후 경제위기 상황별로 국내 노동시장을 분석한 결과를 내놓았다. 분석 결과 외환위기와 세계 금융위기 등 외부의 경제적 충격으로 인해 고용률이 하락한 경우 위기 이전 수준의 절반 정도까지 회복되는 데는 평균 6분기(1년6개월)가 소요되는 것으로 추정했다. 현재의 금융위기에 적용해보면 우리나라 고용률 회복은 내년 상반기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지금까지는 정부의 일자리 사업으로 고용시장이 그럭저럭 버텨온 것으로 평가된다. 통계청이 발표한 8월 고용동향을 보면 취업자 수는 2360만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3000명 증가하기도 했다. 취업자수가 전년동기 대비 늘어난 것은 지난 6월 4000명 증가한 데 이어 올 들어 두 번째다.

문제는 긍정적 신호가 나타난 것은 맞지만 이것이 자생적인 회복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부의 희망근로 사업 등 한시적 일자리가 늘면서 공공서비스업 취업자만 전년 동월 대비 46만2000명 늘었으나 일반인들이 고용시장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제조업이나 건설업,도소매업,음식숙박업 등은 여전히 10만~15만명 수준으로 취업자가 줄었다. 게다가 희망근로사업이 11월에 종료되는 등 추경예산에 따른 정부의 일자리사업이 연말에 끝나면 12월 이후 고용 여건이 악화될 가능성도 있다. 특히 일용직 일자리가 급감하는 혹한기가 다가오는 데다 비정규직법 개정 지연과 기업 구조조정도 악재로 꼽힌다.

◆부동산시장 불안

기획재정부가 지난 8일 발표한 '최근 경제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9월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월대비 0.8% 상승했다. 전세시장은 지난 3월 이후 7개월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물론 상승세가 서울 강남권,경기도 과천 등 수도권 일부 지역에 국지적인 모습으로 보이고 있는 데다 전반적인 주택가격 수준도 아직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부동산 시장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이미 경기 회복 기대감과 낮은 대출금리가 부동산 투자자와 실수요자들의 심리에 부채질을 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 올 들어 7월에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낮췄고,지난달엔 총부채상환비율(DTI)규제를 수도권 전역으로 확대하면서 은행권의 주택담보대출은 증가세가 둔화했지만 비은행권에서 급증세가 나타나고 있다. 올해 2월까지 감소세를 보였던 비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은 DTI 규제가 적용되기 시작한 9월엔 1조3000억원 증가했다. 이에 따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12일부터 신규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DTI 규제를 제2금융권에도 확대 적용했다.

하지만 연말까지 보금자리주택 분양,가을 이사철 등 불안 요인이 겹쳐있는 데다 내년에는 서울지역 입주 물량이 2만8000여세대로 올해(3만여 세대)와 지난해(5만여세대)보다 현저하게 적어 집값 상승의 뇌관은 여전할 것으로 관측된다.

◆재정 여력 바닥난 설비투자

당초 정부는 상반기에 공공부문이 경기 급락을 방어하며 시간을 끌어주는 동안 민간이 체력을 회복해 하반기부터는 본격적인 투자에 나설 것으로 기대했다. 이를 위해 인건비처럼 매달 일정하게 지출되는 돈을 제외한 관리대상 예산 257조7000억원 가운데 64.8%를 상반기에 집행했다.

하지만 기업투자는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8월 설비투자지수는 94.5로 2월 이후 가장 낮았다.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하면 16.6% 감소했다. 특히 건설관련 지표가 많이 쪼그라들었다. 8월 건설 기성액은 6조8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6.8% 줄었다. 올 들어 가장 큰 하락폭이다.

문제는 정부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상반기에 예산을 조기집행하다보니 하반기부터는 쓸 돈이 줄었다는 점이다. 정부지원과 민간투자 사이의 공백이 생겨버린 셈이다. 이에따라 정부는 또다시 4분기 예산 중 10조~12조원을 3분기에 앞당겨 집행하고 연말 불용액을 최소화하는 방식을 택했다. 겨우 살린 회복의 불씨를 꺼뜨리면 안된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이런 지원도 내년 국가채무가 처음으로 400조원을 넘는 등 재정건전성 문제가 심각한 현재 상황에서 더 이상 지속시키기는 힘들어 보인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