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잘 알고 있지만,하이닉스는 이번 기회에 반드시 주인을 찾아야 합니다. "

김종갑 하이닉스반도체 사장은 8일 기자와 단독으로 만나 최근 효성이 하이닉스 인수를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 효성이 반드시 하이닉스를 인수해야한다는 얘기는 아니었지만,국내 다른 원매자들이 없는 상황에서 효성이 나섰다면 잘 마무리되기를 바란다는 뜻이었다. 김 사장은 "신속한 의사결정과 위험을 감수하는 전략적 판단이 중요한 반도체 회사로선 하루라도 빨리 '주인'을 찾아야 한다"며 "채권단도 끝까지 하이닉스 주식을 들고 있을 수는 없는 일 아니냐"고 반문했다.

2007년 3월 하이닉스 사령탑을 맡은 김 사장은 "그동안 주인이 없는 경영구조로 인해 경영에 애로가 많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주주인 채권은행들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줬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채권단의 지원 여부와 별개로 지금과 같은 상태로 계속 기업을 꾸려나갈 수는 없다는 뉘앙스로 비쳐졌다.

그는 이어 시장의 우려에 대해 조목조목 의견을 내놓았다. 우선 효성의 자금력과 관련,"하이닉스를 인수하려는 업체가 모든 면에서 만족스런 조건을 갖추고 있다면 좋겠지만 기업규모나 재무능력만을 기준으로 삼는 건 곤란하다"며 "경기 부침이 심하면서도 매출의 대부분을 해외에서 거둬들이는 사업구조의 성격상 국제 비즈니스 능력과 위기극복 역량도 대단히 중요한 기준"이라고 강조했다.

김 사장은 또 향후 효성의 인수가 현실화될 경우 하이닉스의 자금 조달능력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선 "앞으로 300㎜ 웨이퍼 신규 라인 하나를 지으려면 4조원 이상이 든다"며 "지배주주가 아무리 돈이 많다 하더라도 (하이닉스)바깥에서 돈을 벌어 자금을 대주기는 어려운 여건"이라고 말했다. 미래 하이닉스의 자금 수급은 자체 역량으로 해결해나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김 사장은 특히 하이닉스가 지난 1년간의 글로벌 경기침체 여파를 겪으면서 독자적인 생존능력이 더욱 강해졌다는 점을 강조했다. "생산성과 기술력 등이 반석 위에 올라서있는 만큼 예전처럼 외부에 손을 벌리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채권단과 효성간 매각협상이 적절한 수준에서 타결된다면 굳이 시장의 우려를 예민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김 사장은 그러나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을 중심으로 한 채권단과 효성 간 물밑 대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몇차례 만나지 않았겠느냐"고 말을 아꼈다. 추석 연휴가 끝난 직후 외환은행과 효성 실무진들은 구체적인 인수-매각방안 조율을 위해 활발하게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김 사장은 향후 D램가격 전망에 대해 "해외 고객사들의 동향과 현 수급여건 등을 감안할 때 가격 상승추세가 내년 1분기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그에 맞춰 실적도 단계적으로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에 비해 사업비중이 낮은 낸드플래시 분야에 대해선 "수익력이 상대적으로 좋아 현재 20% 정도인 매출비중을 내년엔 30% 안팎으로 높일 것"이라며 "연내 32나노 공정을 개발해 내년 초부터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내년 투자계획과 관련해선 "신규라인 건설계획은 없지만 유지 · 보수 및 공정 업그레이드 부문 투자를 올해(1조원)보다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선 하이닉스의 내년 투자규모가 1조5000억~2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