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국내 유통산업을 주도해 온 대형마트가 성장 위기를 맞고 있다. 올 들어 불황에도 백화점과 기업형 슈퍼마켓(SSM),온라인몰이 두 자릿수 성장세를 이어가는 반면 대형마트들은 신규 점포 효과를 제외하면 정체 상태다. 유통전문가들은 앞으로도 시장이 포화인 데다 가격 · 편의성 · 접근성 등에서 온라인몰이나 SSM과 경쟁이 치열해져 더욱 고전할 것으로 보고 있다.

대형마트 vs 백화점 성장률 역전

통계청과 롯데쇼핑 유통산업연구소에 따르면 1998년부터 대형마트의 매출 증가율은 백화점을 항상 앞서 왔다. 하지만 지난해 그 격차가 급격히 좁혀졌다. 2007년만 해도 대형마트는 9.9% 증가해 백화점(3.3%)보다 6.6%포인트 높았지만 지난해에는 대형마트 5.6%,백화점 4.9%로 0.7%포인트차로 줄었다. 올해는 아예 백화점이 대형마트를 앞지른다. 지식경제부가 매달 발표하는 '주요 유통업체 매출동향'(기존점포 기준)에 따르면 지난 3월 이후 백화점은 2.8~7.8% 증가했지만 대형마트는 4~5월을 빼면 줄곧 마이너스 성장세다. 대형마트는 신규점(최근 1년 내 새로 낸 점포)을 포함한 매출 증가율로도 백화점에 뒤지고 있다. 백화점 1위인 롯데백화점은 올 1~9월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1.0% 늘었지만 대형마트 선두인 이마트는 5.9%에 머물렀다.

시장 포화로 신규점 출점 애로

대형마트의 성장 둔화는 무엇보다 시장포화로 인한 신규점 출점 감소다.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 등 대형마트 3사는 작년만 해도 예년 수준인 28개 신규점을 냈지만 올 들어선 9개에 그쳤다. 전국 점포수가 이미 400개에 육박해 더 이상 점포를 낼 부지나 상권을 찾기 어렵다. 이미 확보한 부지도 지역 상인들의 반발과 지자체 인 · 허가 지연으로 공사가 연기되기 일쑤다. 또 신규점을 내더라도 인근에 이미 자리잡은 기존 점포들의 매출을 갉아먹게 된다. 업계 관계자는 "3~4년 전부터 기존 점포들은 사실상 제로(0) 또는 마이너스 성장을 해왔다"며 "그나마 성장세를 이끌어온 신규점 출점이 부진하자 전체 성장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부메랑이 된 SSM 급팽창

대형마트를 거느린 롯데,신세계,홈플러스 등 대형 유통업체들은 그 돌파구로 SSM에 주목해왔다. 하지만 앞다퉈 늘린 SSM이 오히려 부메랑이 돼 대형마트의 부진을 가속화시키는 양상이다.

우선 불황 속에 소비자들의 구매패턴이 바뀌었다. 수시로 차를 몰고 가 쇼핑카트 한가득 물건을 샀던 소비자들은 이제 집에서 가깝고 소량 구매할 수 있는 SSM을 더 자주 찾는다. 가격 경쟁력과 서비스도 대형마트 못지 않다. 최근 골목 상인들의 반발과 사업조정으로 주춤해지긴 했지만 롯데슈퍼,GS수퍼마켓,홈플러스익스프레스 등 SSM '빅3'의 점포수는 2007년 말 228개에서 작년 말 327개,이달 445개로 2년 새 2배로 급증했다.

장중호 신세계 유통산업연구소장은 "고객층과 취급품목이 겹치는 SSM,온라인몰의 성장으로 대형마트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대형마트들이 앞다퉈 PB(자체상표) 강화,다양한 편의시설과 서비스 확충에 나서는 것도 더욱 치열해질 유통채널 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포석"이라고 말했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