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큐,아일랜드."(주제 마누엘 바로수 EU 집행위원장)

유럽연합(EU)을 하나의 정치체제로 묶는 리스본 조약이 최대 난관 아일랜드 국민투표를 통과했다. 이제 EU가 미국과 같은 하나의 국가인 유럽합중국(United States of Europe)으로 변모하는데 성큼 다가서게 된 것이다. 이미 세계 최대 경제블록인 EU가 정치적 통합마저 이루게 되면 글로벌 정치파워는 미국 중국 유럽의 3극 체제로 재편되고 유럽대륙의 발언권은 더욱 세질 전망이다.

◆경제 위기로 180도 입장 바꾼 아일랜드

16개월 전 리스본 조약 국민투표를 부결시켜 유럽합중국 출범을 벼랑끝으로 몰았던 아일랜드가 이번에는 큰표 차이로 조약을 통과시킨 배경에는 아일랜드를 강타한 경제위기가 있었다. 한때 규제 완화와 감세를 무기로 '켈틱 타이거'로 불리며 세계경제의 기린아로 꼽히던 아일랜드는 지난해 말 글로벌 경제위기의 직격탄을 맞으며 금융권이 파산하고 실업률이 15%대로 치솟으면서 '유럽의 중환자'로 전락했다.

19세기 감자대기근 이래 최악의 위기로 꼽히는 유례없는 경기침체 와중에 리스본 조약마저 부결시킬 경우 '쓸데없는 자존심만 세워 EU에서 고립되는 것 아니냐'는 유권자들의 위기감이 높아졌다. 그 결과 국민 5분의 1가량이 1년여 만에 찬성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더블린 시내 스코일 초등학교 투표장에서 만난 메리 디건씨(29)는 "작년엔 아무도 리스본 조약이 무엇인지,왜 찬성해야 하는지 몰랐다"며 "하지만 조약 내용을 접하게 되면서 EU와 아일랜드가 더 가까워져야 한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이르면 내년 1월1일 '유럽합중국' 출범

EU 27개 회원국 가운데 아일랜드가 25번째로 리스본 조약을 승인함에 따라 이제 체코와 폴란드만 조약을 비준하면 유럽합중국 출범이 가능하게 된다. 두 나라 모두 의회에서 리스본 조약이 통과된 상태로 대통령 서명만을 남겨 놓고 있다. 폴란드와 체코에서 비준이 연내에 마무리될 경우 내년 1월1일 리스본 조약이 발효될 가능성이 크다.

리스본 조약이 정식 발효되면 EU는 정상회의 상임의장(EU 대통령직) 선출에 나서게 된다.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매년 4회 이상 개최되는 EU 정상회의를 주재하고 역시 리스본 조약에 의해 신설되는 외교 · 안보정책 고위대표 권한을 제외한 범위에서 EU를 대외적으로 대표한다. 다만 EU 대통령은 정상회의만 주재할 뿐 9개 이사회는 종전의 순번의장국 시스템이 유지돼 6개월마다 돌아가면서 해당 회원국의 소관 부처 각료가 의장을 맡는다.

그동안 EU의 27개 회원국은 이사회(The Council of European Union)와 정상회의(European Council)를 통해 의견을 조율하고 의사결정을 해왔다. 또 이사회 안건 선정과 사전 조율,회의에서 채택할 성명이나 의장국 결론 초안을 작성하는 일을 의장국이 맡아왔다. 하지만 6개월마다 의장국이 교체되면서 정책의 일관성이 의문시됐고 2004년 이후 대거 가입한 옛 공산권 회원국 가운데 일부 국가는 의장국으로서 지도력과 추진력을 발휘하지 못해 순번의장국 시스템에 변화가 필요했다.

더블린=이상은/김동욱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