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 동안 지속된 '수주 가뭄'으로 어려움을 겪어온 대형 국내 조선사들이 프랑스발(發) 악재 앞에서 노심초사하고 있다. 세계 3위 컨테이너 선사인 프랑스 CMA CGM이 채무 불이행(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면 국내 조선사들은 연쇄 피해가 불가피하다. CMA CGM과 직접 거래관계가 없는 국내 해운업계도 파장을 지켜보며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대량 발주 취소 악재 터질까

CMA CGM의 부채 규모는 약 35억유로(한화 6조원 규모)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해 이 회사의 회생을 지원할지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컨테이너 선복량 기준으로 세계 3위(약 100만TEU · 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인 CMA CGM이 만약 채무 불이행을 선언하고 선박 발주를 취소한다면 국내외 조선 · 해운업계에 미치는 파장은 적지 않을 전망이다. 국내 조선사들이 CMA CGM으로부터 수주한 선박은 총 43척이다. 금액으로 따지면 총 50억달러 규모로 국내 전체 조선소의 한 달치 일감이다. 이 중 올해 내로 인도할 물량은 총 12척(17억달러 규모)이다.

국내 대형 조선회사 중 CMA CGM으로부터 가장 많은 선박을 수주한 곳은 현대중공업으로 내년까지 1만1356TEU급 컨테이너선 9척을 인도할 예정이다. 대우조선해양은 1만3300TEU급 8척,삼성중공업은 8465TEU급 5척을 각각 수주했다. 현대미포조선은 로로선(자동차 운반선) 6척을 수주해 놨다. 한진중공업은 부산조선소와 필리핀 수비크조선소 물량을 합해 모두 15척이다.

지헌석 NH투자증권 기업분석팀장은 "상황을 더 지켜봐야겠지만 악재임에는 분명하다"며 "수주 가뭄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2011년 이후 수주 물량마저 취소되면 생각보다 충격이 클 수 있다"고 말했다.

◆"엎친데 덮친격…사태 더 지켜봐야"

국내 최고의 '달러 박스'로 통해온 조선업은 지난 1년 동안 최악의 수주 가뭄으로 어려움을 겪어 왔다. 연초에 세웠던 계획의 10분의 1도 달성하지 못했다. 이미 대형 조선업체들의 현금성 자산은 작년 이맘 때와 비교해 30~40% 수준으로 줄었으며 수주 대금을 회수하지 못해 생긴 매출채권은 대폭 늘어났다. CMA CGM의 채무 불이행 선언 및 발주 취소는 대형 악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의 추이를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장이나 증권가 예상보다 피해가 크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조선사의 선박 인도 시점을 조정하는 수준에서 협상이 진행되거나 CMA CGM에 대한 다른 구조조정 방안이 나올 수 있다는 것.

조선협회 관계자는 "프랑스 정부나 채권단이 대형 선사를 한꺼번에 무너지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대량 발주 취소나 채무 불이행 선언과 같은 최악의 상황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수주한 선박의 선수금과 중도금을 받은 상태여서 최악의 상황이 오더라도 큰 타격을 입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운업계 역시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내 1,2위 컨테이너 선사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CMA CGM과 제휴를 맺고 있지 않아 직접적 손실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히려 CMA CGM의 파산이나 채무 불이행 선언이 호재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애널리스트는 "세계 3위의 선사가 없어지면 컨테이너선 공급 물량 자체가 줄기 때문에 국내 선사에는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장창민/박민제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