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째 기다리고 있는 바이어들을 위해 지난 3월 이후 줄곧 공장을 24시간으로 돌리는 데도 물량을 대지 못하고 있습니다. "

충북 오창 외국인투자단지에 있는 리튬이온전지 분리막 전문기업 더블유스코프 코리아에서 24일 기자와 만난 최원근 대표(사진)는 "향후 몇 년간 이런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돼 연내 생산시설을 두 배로 늘리는 공사에 들어갈 예정"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분리막은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리튬이온전지의 핵심부품.지금까지 일본의 아사히 · 토넨 등 몇몇 세계적인 분리막 전문기업이 생산을 독점해왔다.

회사는 2002년 세계 세 번째로 분리막 자체 개발에 성공했다. 2000년 창업 당시 함께했던 화학전문 대기업 연구원 출신인 최 대표의 친구들이 재직 당시부터 일본 업체들의 특허를 피해 기공(氣孔) 가공기술을 몇 년째 개발해온 데 따른 값진 성과였다. 분리막 개발은 양극과 음극물질이 섞이지 않도록 분리막 표면에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 기공을 일정한 크기로 뚫는 것이 까다로워 대기업도 선뜻 뛰어들기 어려운 분야다. 국내에선 SK에너지가 2004년 자체 개발한 뒤 2년 넘도록 토넨으로부터 특허소송을 당하는 바람에 최근 양산에 들어갔다.

회사의 제품은 분리막 재료로 폴리에틸렌을 사용했다. 경쟁사 제품보다 가격은 30% 정도 저렴하고 내구성이 30% 높은 것은 물론 섭씨 160도의 고온에서도 변성이 되지 않는 등 물성이 뛰어난 것이 특징이다.

회사는 미국의 주요 전지회사인 A123과 코캄,중국의 BYD 등 전 세계 30개 업체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올해 매출은 지난해의 4배인 200억원으로 예상된다.

특이한 점은 더블유스코프코리아가 외국기업 계열사라는 점.일본에 본사를 둔 더블유스코프가 국내에 만든 생산법인이다. 최원근 대표는 두 회사의 설립자이자 대표이사다. 이 같은 형태를 띠게 된 것은 최 대표가 창업 초기 겪은 '시련'에서 비롯됐다.

1990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세계 최초로 17인치 LCD모니터를 상업화하고 잇달아 LCD모니터 신제품을 히트시키는 등 '기획의 귀재'로 불리며 8년 만에 특진을 거듭,차장까지 승진했던 그는 2000년 분리막 사업에 뛰어들었다.

친구들과 의기투합해 제품 개발에는 성공했지만 상업화를 겨냥한 투자자금 유치는 너무나 힘들었다. 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 등을 찾아다녔으나 반응은 냉담했다. 최 대표는 "당시만 해도 2차전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던 시절인 데다 중요성을 알고 있다 해도 '대기업도 못하는데 너희가 어떻게 하느냐'며 사기꾼 취급까지 하더라"고 말했다.

결국 최 대표는 2005년 2차전지 선진국인 일본에 가서 몇 달간 투자 권유를 하고 다녔다. 이런 고생 끝에 가나가와 현에 있는 벤처캐피털 쓰나미가 선뜻 1000만달러를 투자한다고 나섰다. 다른 벤처캐피털과 미쓰이 등 대기업을 비롯해 가나가와 현청까지 투자를 결정해 약 3000만달러를 모을 수 있었다.

최 대표는 "사업을 시작하고 몇 년간 수입이 전혀 없었던 것은 물론 애써 개발한 기술까지 무용지물이 될까봐 너무 고심해 어금니 8개가 몽땅 다 빠졌다"며 "일본에서 기술적으로 인정을 받으면서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회사는 2007년 15억원어치를 판매한 것을 시작,매년 3~4배의 매출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최 대표는 "다음 달 미국의 모 2차전지 전문기업과 3000만달러짜리 계약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며 "내년에는 350억원,2011년에는 600억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오창(충북)=임기훈 기자 shagg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