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2009년 신년호에서 에너지 절약을 '제5의 에너지(Fifth Fuel)'로 꼽았다. 에너지 절약과 효율이 높은 제품을 사용하는 것을 석유,석탄,원자력,신재생에너지에 이은 주요 에너지원으로 언급하면서 2020년까지 세계 에너지 수요의 20% 이상을 감축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에너지 확보 못지않게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시사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우리나라가 신재생에너지를 개발하는 데는 많은 애로가 따른다. 제한된 국토 여건,부족한 기술,낮은 경제성으로 인한 보급 확대의 어려움 등 극복하기 쉽지 않은 문제들이다. 실제로 100만㎾의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태양광발전은 서울월드컵경기장 151개(여의도 면적의 9배,약 75㎢),풍력발전은 경기장 51개(여의도 면적의 3.5배,약 30㎢)에 해당하는 공간을 필요로 한다. 반면 원자력발전은 고작 경기장 1개(0.6㎢) 규모의 공간을 필요로 할 뿐이다. 투자 대비 효율성 측면에서만 본다면 신재생에너지 개발을 위한 투자는 경제논리에 반하는 행위인 것이다.

그렇다면 에너지원 수입률 97%,국민 GDP의 70%를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차세대 에너지 정책의 초점을 어디에 둬야 할 것인가. 그 해답은 바로 '제5의 에너지'에서 찾을 수 있다. 국가 에너지 효율이 10% 증가한다면 석유에너지 가격 기준으로 약 5조원의 절감 효과와 함께 연간 20만명의 일자리 창출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자동차 및 가전제품 사용에 있어 에너지 효율 향상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들 제품에서의 에너지 사용량이 전체의 30%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정부는 현실적 대안으로'연비 강화 지침'을 내놓았다. 이제 중 · 장기적인 관점에서 에너지효율 향상 관련 기술 육성 및 정책 정비 등 미래산업에 대한 명확하고 세부적 청사진이 필요한 시기다.

주요 선진국의 경우 미국은 1992년부터 에너지 효율성 마크인'에너지 스타(Energy Star)'인증을 부여해 에너지 효율 향상에 힘쓰고 있다. 자동차 환경기준도 대폭 강화해 현재 ℓ당 11.7㎞인 승용차 연비 기준을 2016년까지 16.6㎞로 강화한다는 방침 아래 기준 미달인 자동차는 판매할 수 없다는 강력한 규제책을 내놓았다. 유럽도 기존의'에너지 라벨(Energy Label)'제도를 더욱 강화해 등급이 낮은 제품은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자동차의 경우 2012년까지 신차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주행거리 ㎞당 평균 130g이하로 낮추고,규정을 위반한 자동차 제조업체에는 벌금을 물리기로 했다.

최근 우리 정부도 2012년부터 단계적으로 자동차 연비 규제를 강화해 2015년부터는 자동차 연비 기준을 ℓ당 17㎞ 이상으로 높인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이는 주요 선진국보다 1년 먼저 세계 최고 수준의 연비 향상을 달성한다는 목표 하에 추진되는,자동차 강국인 미국보다 한층 강화된 기준인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자동차 연비향상이 가져오는 경제적 파급효과다. 전체 차량 연비를 ℓ당 5㎞ 정도 향상시킬 경우 석유에너지 가격으로 환산하면 3조원에 해당하는 에너지가 절감되는 효과를 볼수 있으며 이는 부산광역시에 1년간 에너지를 무상 공급할 수 있는 수준이다.

국제사회는 이미 글로벌그린스탠더드에 따라 에너지 · 환경 규제정책을 추진한다는 원칙에 합의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로서는 기업들이 국제적 에너지 · 환경규제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적극 대비하고 정책적인 배려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더 나아가 미국,EU(유럽연합)보다 한층 강화된 수준의 에너지 효율 기준을 시행해야 한다. 국제표준이'기술장벽'이라는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대량생산 · 대량소비를 미덕으로 하던 20세기 경제패러다임 대신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새로운 경제패러다임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에너지 저소비형 경제구조 정착을 지향하는'제5의 에너지'정책이야말로'대한민국식 녹색정책'의 근간이 돼야 함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이상천 <한국기계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