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전 우리금융회장 겸 우리은행장)이 23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지난 9일 금융위원회가 황 회장에 대해 우리은행장 재직시절 파생상품 투자 손실 책임 등을 들어 `직무정지 3개월 상당'의 제재를 내린 지 보름 만이다.

황 회장으로서는 KB금융지주 회장에 취임한 이후 임기 1년을 못 채우고 자리에서 물러나는 셈이다.

황 회장이 스스로 사의를 밝힌 것은 우리은행 파생상품 투자 손실을 둘러싼 공방이 제기된 이후 금융권 안팎의 잇따른 사퇴 압력을 이기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예금보험공사는 황 회장의 이번 거취 표명과 관계없이 조만간 임시 예보위를 열어 황 회장에 대한 징계를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황 회장, 사의 표명 왜?
황 회장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사임의사를 발표했다.

그는 이 자료에서 "이번 금융위원회의 징계 조치에 의해 제가 KB금융지주 회장직을 유지하는데 법률상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선도 금융그룹의 최고경영자로서 본인의 문제로 인해 조직의 성장·발전이 조금이라도 지장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저의 오래된 소신"이라며 이유를 밝혔다.

과거 우리은행 경영진 시절의 일로 인해 현재 몸담은 회사까지 악영향을 받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진 것이다.

그는 그러나 "우리은행 재직시 CDO·CDS 투자와 관련한 금융위원회의 징계조치에 대해 수차례의 소명 노력에도 불구하고 저의 주장이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해 억울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황 회장은 그동안 우리은행 파생상품 투자 손실과 관련, "위법이 아니며 전대미문의 금융위기로 인해 초래된 것"이라며 한치의 물러섬이 없이 대응해왔었다.

하지만 금감원과 금융위원회의 잇따른 중징계 결정이 내려진 뒤 금융감독당국과 지주사 안팎에서 거센 사퇴 압력에 시달려야 했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13일 "황 회장 징계 건은 평면적으로 보면 '해임 사유'에 해당하나 당시의 경제여건을 고려했고 자신이 고의로 한 것이 아니고 리스크 관리 실패라는 정상참작을 했다"고 말했다.

또 우리은행장 출신인 박해춘 전 국민연금 이사장이 1년 만에 자진해서 사퇴한 점도 부담이 됐을 가능성이 있다.

KB금융지주 이사회 내에서 사퇴 압력도 거셌던 것으로 보인다.

KB금융 사외이사는 그동안 공식적으로 황 회장의 거취와 관련해 논의하지 않았지만 "황 회장이 입장 표명이 없다면 이사들과 논의할 것"이라며 간접적으로 황 회장을 압박했다.

금융권은 황 회장이 회장직에 물러난 후 법적 대응에 나설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금융위에 재심을 청구하더라도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희박한 만큼 재심 청구 대신 법적 대응을 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다.

◇예보, 예정대로 징계
예금보험공사는 황 회장의 거취 표명과 관계없이 조만간 황 회장에 대한 징계를 결정할 예정이다.

예보는 당초 이날 열린 정례 예보위원회에서 황 회장 징계 안건을 논의할 예정이었으나 다음 초에 임시 회의를 열어 황 회장 징계 안건을 논의하기로 했다.

예보도 지난해 4분기 우리금융이 경영이행약정(MOU)을 달성하지 못한 데는 황 회장의 투자 손실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어 가장 수위가 높은 `해임 상당'이나 `직무정지 상당'의 징계를 내릴 것으로 전망된다.

예보 고위 관계자는 "황 회장이 KB금융지주 회장에서 물러나는 것과 예보가 우리금융 책임 실패를 묻는 것은 별개의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이날 중 정례 예보위를 마치면 예보위원들과 협의해 임시회의 날짜를 잡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예보는 우리은행을 통해 황 회장에 대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는 방안도 계속 검토 중이다.

예보 관계자는 "정확하게 법률 검토를 거친 뒤 소송을 할지 여부를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권 파장 촉각
한편 황 회장의 사임에 대해 금융권은 "예상했던 일"이라면서도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최근 금융위원회로부터 징계를 받은 박해춘 국민연금 이사장이 지난 11일 사의를 표명한 데 이어 황 회장마저 사의를 표명하면서 이종휘 우리은행장 등의 거취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이 행장은 2004~2007년 황 회장 재임 시절 우리은행 수석 부행장이면서 당시 리스크관리협의회 의장을 담당했으며 투자자산의 사후 관리 책임을 물어 `주의적 경고'를 받았다.

우리은행은 이 행장이 투자 당시 최고경영자도 아니었던 데다 리스크관리협의회 의장을 맡으면서 리스크 관리 기준을 강화했다는 입장이지만, 작년 6월 취임했기 때문에 사후 관리 책임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일각에서는 황 회장 파문으로 금융업계가 전체가 악영향을 받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유가증권 투자 문제로 횡령이나 분식회계 등 위법 행위에 준하는 중징계를 받는 사례가 생겼기 때문에 금융업계 최고경영자들이 해외투자나 인수.합병(M&A), 투자금융(IB) 등과 관련한 결정을 기피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황 회장도 이날 "도전정신과 창의력이 성장·발전의 기반이 되어야 하는 우리나라 금융시장에서 저에 대한 징계로 인해서 금융인들이 위축되고 또 금융시장의 발전에 장애가 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 간절한 저의 소망"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최현석 기자 fusionj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