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나 롯데가 쳐다보지 않는다면 밖에서 찾는 수밖에 없죠.""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국내 SI(전략적 투자자)가 M&A전용 사모펀드를 끌어들이는 것인데 상황이 여의치 않네요. "

대우건설과 하이닉스 매각작업을 지켜보는 금융당국과 채권단 고위 관계자의 최근 발언이다. 한 차례 매각작업이 결렬된 대우조선해양도 이 같은 어려움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채권단과 정부의 고민이다. 대형 M&A매물이 잇따라 쏟아지고 있지만 국내 자본시장의 한계로 이를 받아주지 못하는 상황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 구조조정이 지연되고 새로운 자본이 유입되지 못하는 악순환이 우려되고 있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22일 "대우건설과 하이닉스 등 우량 매물이 국내 대기업에서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그나마 인수의지가 있는 기업들은 자본조달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마감된 하이닉스반도체 투자의향서(LOI) 접수결과 채권단이 기대했던 '톱10' 안팎의 기업들은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사모펀드 한 곳이 관심을 가졌다가 자금부담으로 접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대우건설 인수전 역시 미국 엔지니어링업체와 글로벌 사모펀드,중동의 국부펀드와 같은 외국계 투자회사들의 각축구도로 가고 있다.

이처럼 대형 매물들은 해외에서 주인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지만 국내 제조기술의 핵심 경쟁력을 보유한 이들 업체의 해외매각에 따른 부작용으로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하이닉스의 경우 채권단이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기하고 지분을 쪼개 블록세일(일정한 지분을 한 묶음으로 파는 것)형태로 팔거나 국민기업 형태로 가져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한 시중은행 투자금융 담당자는 "대형 매물 서너 개만 나와도 시장에 '잼'이 걸려 교통정리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라며 "번번이 해외펀드에 높은 수익률을 제시하고 손을 벌려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8월 말 현재 국내에 등록된 사모투자전문회사(PEF)는 모두 94개로 설정액은 16조2248억원이다. PEF당 평균 1726억원이다. 이 중 운용금액은 설정액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8조원 안팎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산은 PE팀 관계자는 "그동안 법적 제약으로 PEF시장 자체가 커지지 못했다"며 "사모펀드의 규모도 대형물건을 소화할 여력이 안 될 뿐 아니라 여기에 참여할 금융회사도 적고 운용경험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산업은행이 올 상반기 사모펀드를 통한 대기업 구조조정 지원방침을 내걸었지만 성공적인 사례가 나오지 않는 것도 자본시장의 협소함이 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당초 산은은 대기업이 계열사 매각을 요청할 경우 시장가격에 30%의 프리미엄을 주고 인수한 뒤 향후 시장이 회복될 경우 되파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아직 단 한 건의 성과도 내지 못하고 있다.

김형태 자본시장연구원장은 "지금은 국내 투자여력이 커질 때까지 기다리거나 해외자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정부가 아닌 시장 주도의 구조조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심기/장경영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