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이 경쟁적일수록 개별기업의 힘은 줄어든다. 시장전체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면 개별 기업은 이렇게 결정된 가격을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가격수용자(price taker)가 된다. 가격을 움직일 힘이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독점 혹은 과점시장에서는 다르다. 독과점은 소비자에게는 불리하지만 기업에는 유리하다. 이와 같은 기업의 힘은 가격을 좌지우지하는 힘으로 나타난다. 독점이나 과점시장에서 기업은 가격설정자(price setter)가 된다. 이처럼 외부에서 정해진 가격을 그대로 수용하느냐 아니면 가격을 설정할 수 있느냐는 것은 개별 기업의 힘을 반영하는 것이다. 물론 모든 기업들은 제한적으로라도 독과점력을 보유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경쟁자가 많은 레드오션보다는 경쟁자가 없는 블루오션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얼마 전 G20 정상회담과 관련한 실무회의에 우리나라의 관료가 참석했는데 선진국 실무진끼리는 서로 잘 알고 있고 자기들끼리 '톰'이니 '지미'니 하면서 서로 이름을 부르는 데 우리나라 실무진은 처음 보는 얼굴이라 이름을 모르니까 '미스터 코리아'라고 부르더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름이 '한국에서 오신 분'이 돼버린 셈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가 국제무대에서 주체적인 입장에서 의견을 개진하고 국제적인 기준을 만드는 작업에 참여한 경험은 그다지 많지 않다. 특히 금융 분야에서는 선진국들이 만들어낸 기준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국제기준 수용자(rule taker)의 위치에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에 경험한 글로벌 금융위기는 우리의 입장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시작된 화재가 전 세계로 번지는 과정에서 G7으로 상징되는 선진국들은 G20라는 확대회의를 통해 화재진화 논의를 시작했고 G20에 참여하게 된 우리나라는 이제 세계무대에 신인으로 등장해 본격적인 활동을 벌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금융안정위원회'의 경우 과거에는 G7 중심으로 12개국이 참여해 만든 금융안정포럼이라는 조직이었는데,이 조직이 확대 개편돼 G20를 포함한 24개국이 참가하는 큰 기구가 됐다.

이 조직은 스위스 바젤에 본부를 두고 있고 향후 금융 관련 국제규제 및 감독정책수립과 구조개편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부여받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여기에 수시로 참여해 여러 작업을 공동으로 수행하는 위치에 이르게 된 것이다. 글로벌 스탠더드로 불리는 기준들도 결국은 사람이 만든다. 지금도 지속되는 달러본위의 브레턴우즈 체제도 미국이 2차대전의 전승국 지위를 이용해 자신에게 유리한 체제를 만들어 국제기준으로 정착시킨 결과물이었다.

이번 주 미국 피츠버그에서 세 번째 G20 정상회담이 열린다. 그리고 네 번째 정상회담을 내년에 서울에서 개최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추진된다고 한다. 최근 이와 관련해 선진국 금융위기가 조금 더 진행돼 내년 서울에서 중요한 의제들이 논의되면 좋겠다는 농담까지 오가고 있는 상황이다. 내년에 우리나라가 G20의 의장국으로서 회담 개최국의 역할까지 할 수 있다면 우리로서는 금상첨화의 기회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세계 유수국의 정상들이 참여한 국내 회담장에서 의장석에 앉아 사회를 보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장면이다.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에 큰 도약이 이뤄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제 이러한 계기를 이용해 과거에는 국제적인 기준의 '기준 수용자'에 가까웠던 우리 위상이 이제는 국제기구와 회담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국제기준을 설정하는 '기준설정자'(rule setter)의 지위로 격상되면서 우리도 우리의 국익까지 감안한 제도나 관행을 국제기준으로 설정하는 글로벌 슈퍼파워의 수준까지 이를 수 있도록 다같이 협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때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ㆍ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