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선물세트 배송 첫날인 지난 21일 아침,서울 가산동 현대백화점 물류센터는 사람과 물건,차량이 엉켜 북새통이었다. 아침부터 굵은 빗줄기가 쏟아졌다. 배송에는 최악의 날씨였다. "비 때문에 배송 아르바이트 못 갈 것 같다"는 주부들의 전화가 이어졌다. 직원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미리 와 있는 주부 아르바이트 지원자들에게 "주변에 (배송 아르바이트할) 마땅한 사람 없느냐"고 연신 물었다.

기자와 동행할 김부언씨(36)가 허겁지겁 도착했다. 경기 하남에 사는 그는 남편에게 두 아이 등교 준비를 맡기고 오느라 늦었단다. 현대백화점 인재개발원 강사의 교육으로 일정이 시작됐다. "고객에게 선물을 건넬 땐 두 손으로,그 다음엔 '즐거운 한가위 되십시오'라고 인사하고 나오면 됩니다. " 모인 이는 40여명,30~40대 주부가 많았다.

"예전에 배송 알바를 두번 해봤어요. 주부들에겐 정육 한과 등 가벼운 선물 위주로 맡겨 힘들진 않아요. 배송을 서두르면 남편 퇴근 전에 집에 들어갈 수 있거든요. " 애들 학원비 보태러 나왔다는 김씨의 일당은 4만4000원.

이어 이날 하루 호흡을 맞출 '짝꿍'을 만나는 시간.짝꿍은 콜밴 운전기사 송재육씨(56)다. 송씨는 명절 선물배송 8년차의 베테랑이다. 평소 본업은 콜밴 운전이지만 "신종 플루 탓에 해외 나가는 사람이 없어서 파리만 날린다"고 했다. 송씨의 일당은 차량을 포함해 16만원.

할당된 지역은 금천구와 관악구 일대였다. 독산동 시흥동 서원동 성현동 은천동 등 다세대 연립과 단독주택,아파트가 뒤섞인 서민 동네다. 배송 물량은 총 37개.한우 정육이 많고 나머지는 한과 곶감 과일 등이다. 비 때문에 모든 선물세트를 일일이 비닐로 포장했다.


물류센터 직원이 전표를 건넸다. '시작 9시50분,종료 예상 시간 5시35분'이라고 적혀 있다. 이동거리를 고려해 미리 동선을 짜 놓았다. "너무 늦게 시작하는 거 아니냐"고 묻자 "주부들이 남편 출근,애들 등교시키고 아침잠을 자기 때문에 일찍 가면 실례"라는 설명이 돌아왔다.

첫 배송지는 금천구 독산4동의 주택가. 김씨는 백화점에서 지급받은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낭패다. 오후 늦게야 돌아온단다. 주택이라 주변에 맡길 만한 곳도 없어 오후에 다시 가기로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탄력이 붙었다. 둘의 손발이 척척 맞기 시작한다. 김씨가 빗속을 달려 배송을 간 사이,송씨는 다음 행선지에 빨리 가는 길을 연구한다. 사과 배 같은 무거운 과일상자는 '신사도'를 발휘한 송씨가 함께 들어줬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김씨는 지급받은 손소독제로 손을 닦았다. 신종 플루 때문에 생긴 진풍경이다.

선물을 받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비에 젖은 김씨가 안쓰러운 듯 시원한 물 한 잔을 권하는 고객도 있다. 어떤 고객은 집 현관키 비밀번호까지 알려주며 선물을 들여놓고 가라고 했다. 반면 안하무인형도 있다. 한 아주머니는 "내가 외출 중인데 곧 돌아갈 것 같으니 일단 기다리라"고 했다. 김씨는 관악구 삼성동의 아파트 입구 계단에 주저앉아 기다렸다. 아까운 시간 10여분이 하염없이 흘러갔다.

비 때문에 애를 먹고 번지를 찾기 힘든 주택가가 많아 골목을 헤맸다. 37개 선물세트를 모두 배달하고 물류센터로 돌아온 시간은 오후 5시50분.김씨는 "빗속 배송이 힘들었지만 벌써 명절 기분이 느껴지는 것 같다"며 뿌듯해 했다. 현대백화점이 추석 특수를 위해 다음 달 2일까지 투입하는 인원은 3500여명,예상 배송 물량은 14만개다. "즐거운 한가위 되세요!" 김씨는 애들을 친정에 맡겼다며 퇴근을 서둘렀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