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공항 등 국내 14개 공항을 관리 · 운영하는 한국공항공사가 공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노사 합의를 통해 임직원의 임금을 삭감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결정이 정부의 공기업 경영 합리화 추진에 큰 영향을 미쳐 공기업 개혁 도미노의 신호탄이 될지 주목된다.

17일 공항공사와 공사 노동조합에 따르면 노사는 지난 1일 임금 협상에서 6.8% 삭감안에 잠정 합의한 데 이어 지난 14일 조합원 총회에서 찬반투표로 임금 삭감 잠정안을 가결했다. 투표에는 전체 조합원 1243명 중 84.9%인 1056명이 참가해 찬성 54.4%,반대 44.9%로 통과시켰다.

노사 양측이 신입사원이 아닌 기존 직원의 임금을 합의 형태로 삭감한 것은 공기업에서는 처음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IMF 구제금융 당시 여러 조치가 있었지만,임금 삭감은 공기업 중에서 최초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공기업들은 과거 경제위기 때마다 일시적인 임금 반납이나 동결,신입사원 급여 축소 등으로 고통 분담 노력에 동참하는 듯한 모양새를 갖췄을 뿐 본질적인 임금 삭감은 외면해 '철밥통'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사측의 임금 삭감 요구는 매년 정부 경영평가 인건비 부문에서 '0'점에 가까운 낮은 점수를 받으며 인건비가 과다하다는 지적이 되풀이되자 실질적인 경영 합리화를 시행한다는 평가를 받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성시철 한국공항공사 사장은 지난해 11월부터 워크숍과 직급별 토론,기수별 직원 모임 등을 통해 경영 합리화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 형성에 주력해왔다. 사측은 지난 5월22일 이례적으로 노조에 임금 및 단체협상을 먼저 요청했고 지난달 8차례의 실무협상을 통해 6.8% 삭감안에 잠정 합의했다.

노조가 임금 삭감을 받아들인 것은 명분보다 실리를 택했다는 평가다. 스스로 임금을 깎음으로써 구조조정 등으로 말미암은 고용불안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항공사는 이번 임금 삭감 합의로 전체 매출의 25% 정도인 인건비 비중이 많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공사 관계자는 "공기업 경영평가에서 인건비 문제만 없다면 감점 요인이 별로 없기 때문에 인건비를 줄인 뒤 경영평가를 우수하게 받아 인센티브를 받는 게 더 낫다"고 설명했다.

노동계는 공항공사 노사의 임금 삭감 합의가 다른 공기업에 미칠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외환위기 당시에도 손대지 못한 임금 문제에 노조의 합의를 얻어 메스를 들이댄 만큼 공기업 전체의 임금 '카르텔'에 균열이 생길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한국공항공사의 임금 삭감안이 향후 노동현장 분위기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공항공사 노조의 상급단체인 민주노총 관계자는 "예외적인 일이라 우려스러운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한국노총도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정책에 맞서 민주노총과 정책 공조를 꾀하는 와중에 공기업 노조가 임금을 깎기로 하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상급노조 관계자들은 그러나 "기관장이 성과를 내기 위해 공항공사 노조를 압박한 데 따른 것에 불과하며 다른 공기업으로 확대될 가능성은 없다"고 평가절하하고 있다.

노동계에서는 "공기업의 임금 삭감은 외환위기로 민간 기업이 대규모 구조조정에 시달릴 때도 성사되지 않았던 사안"이라며 "'당연히 올해도 오른다'는 공기업 노조의 안일한 임금 협상 관행이 바뀌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김인완 기자 i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