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법 개정 논의가 1년 만에 원점으로 돌아왔다. 논의의 시작은 작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정부와 한은 등 정책당국 간 체계적인 대응이 미흡했다는 비판이 촉발시켰다. 특히 한은이 설립 목적인 물가안정만 고집,신속한 대응을 못한 만큼 목적에 '금융안정'기능을 추가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그러나 논의가 진전되면서 금융안정에 필수 요소인 '한은의 금융회사 단독조사권' 문제가 최대 쟁점으로 부상했다.

논쟁은 정치권으로 번졌다. 지난 4월 국회 기획재정위 소위가 한은에 단독조사권을 주는 내용의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정부와 금융당국이 강하게 반대했다. 이에 따라 청와대 국민경제자문회의 산하에 한은법 개정 태스크포스(TF)가 꾸려졌다. TF는 지난 3개월간의 작업 끝에 한은의 단독조사권 배제를 주내용으로 하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정부는 이번에도 연기론을 또 한번 주장하고 나섰다.

17일 국회 기획재정위에서 윤증현 재정부 장관은 네 가지 반대 이유를 들었다. △경제위기가 덜 끝났고 △감독체계 개편에 대한 국제적인 논의가 부족하며 △기관끼리 소모적인 논쟁으로 치달을 우려가 있고 △한은법 개정은 금융행정 체계 전반에 대한 개편 차원에서 논의돼야 한다는 것.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한은법 개정 논의가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이중체계로 돼 있는 감독체계 전반에 대한 손질 문제로 번질 수 있는 데다 금융위와 재정부로 분리된 국내 · 국제 금융업무의 통합 논의로 연결될 수도 있어 서둘러 논쟁을 잠재워야 한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다 위기대응 과정에서 미흡했던 기관 간의 정보공유 등 정책 공조 문제는 지난 15일 체결된 정부와 한은,금감원 간 정보공유 양해각서(MOU)로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윤 장관은 문제의 단독조사권과 관련,"중복조사로 금융회사의 업무 부담이 가중될 뿐더러 감독당국과의 상충 문제도 발생하게 된다"며 "무엇보다 피검자 입장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은의 설립 목적에 '금융안정'을 추가해야 한다는 데 대해서도 재정부는 단서를 달았다. 허경욱 재정부 제1차관은 "한은 목적에 물가안정 외에 금융안정도 병렬로 가게 된다면 한은의 지배구조가 바뀌어야 한다"며 "영국의 경우 중앙은행에 금융안정 기능을 주면서 의장을 재무부 장관이 지명토록 했다"고 말했다.

이성태 총재는 윤 장관의 연기론에 대해 "한은도 앞으로 고려해야 될 사항이 많이 남아 있다고 보지만 지난 1년여 이상 논의해온 만큼 현실적으로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부분은 이번에 처리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그는 "몇 가지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라도 이번 국회에서 짚고 넘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한은의 단독조사권에 대해 "금융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선 한은이 직접 정보를 획득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가려운 발을 구두 위로 긁는 것과 바로 긁는 것은 다르다"고 설명했다. 기관 간 정보공유 MOU에 대해서도 "이전보다 개선된 것이긴 하지만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은 목적에 '금융안정'을 추가할 경우 지배구조가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선 "왜 영국만 예를 드는지 모르겠다"며 "다른 나라의 경우 지배구조를 바꾸지 않고도 잘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정종태/박준동/이태명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