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서울 태평로 프라자호텔. 13명의 손해보험업계 사장들이 몇 년 만에 함께 모였다. 업계의 최대 관심사인 10월 실손형 민영의료보험의 개편을 앞두고 완전판매를 결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그러나 사장들은 극도로 말을 아꼈다. 이상용 손해보험협회장이 대부분 답변을 했다. 기자들이 답변자를 지명하자 마지못해 한두 명의 사장이 마이크를 잡았지만 '알맹이 있는' 답변은 없었다.

실손보험 시장의 과열경쟁을 부추겼던 과다한 선지급수당(설계사가 보험계약을 모집한 대가로 1~2년에 걸쳐 나눠주던 수당을 1~2개월 만에 몰아주는 것) 지급을 지양하겠다고 밝히면서도 '얼마로 제한할 것인지' 묻는 질문엔 구체적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이유는 곧 밝혀졌다. 한 손보사 사장은 "사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구체적인 숫자 등을 거론할 경우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담합으로 걸릴 가능성이 있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사장은 "변호사로부터 '업계 사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오면 자리를 떠야 안전하다'는 조언을 받았다"고도 했다.

지난 몇 년간 보험사들은 1000억원에 육박하는 과징금을 얻어맞았다.

손보사만 해도 2000년 자동차보험료 담합건으로 74억원을 부과받은 뒤(3년 뒤 대법원에서 업계가 승소해 부과가 취소됨)부터 지난해까지 10여건을 조사받았다.

보험 등 금융업은 규제산업이다. 정부가 일정 자격을 갖춘 법인에 라이선스(허가장)를 내주고 영업을 허용한다. 금융당국의 감독 아래 놓인 사업자들은 그래서 비슷한 움직임을 보인다. 상품도 유사할 수밖에 없다. 비슷한 상품을 파는 업계에 과열경쟁 등으로 문제가 생길 경우 금융당국이 행정지도를 하거나 업계가 자율규제를 할 수밖에 없다.

담합 과징금 부과에 반발한 보험사들의 소송이 끊이지 않자 공정위는 2007년 11월에 금감위와 업무협약을 맺고 금융당국의 행정지도는 담합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그러나 협약이 잘 운영된다는 평가는 들리지 않는다.

공정위의 규제로 업계 자정을 위한 행동까지 지장을 받는 현 상황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공정위가 금융업을 제조업과 같은 잣대로 보지 않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현석 경제부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