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제 원당(原糖) 가격 급등으로 국내 설탕 가격이 상승하자 정부는 설탕 완제품의 수입관세율을 낮추겠다는 입장이다. 국회 차원에서도 설탕 완제품의 관세율을 40%에서 10%로 인하하는'관세법일부개정안'이 지난 3월 발의돼 현재'기획재정위 소위'에 계류 중에 있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법안심사가 예정돼 있다.

설탕 수입 관세율을 낮추려는 데에는 설탕 가격 인상에 따른 소비자 부담을 줄여주려는 의도가 작용하고 있다. 설탕은 빵과 과자 음료 등 다양한 가공식품의 기초 원료이기 때문에 설탕 값을 내리면 이들 제품가격도 낮아져 결국 소비자물가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밀가루 등 다른 식품소재와 달리 유독 설탕에만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질문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고율의 관세로 제당산업이 부당하게 높은 수익을 누려온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최종소비재의 관세율 인하는 소비자 후생을 증진시킨다. 하지만 여기에는 단서가 붙는다. 덤핑 등'불공정한'무역관행이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설탕의 경우는 다르다. 세계 최대 사탕무 생산지인 EU가 농민보호를 위해 막대한 보조금을 주면서 설탕을 덤핑수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9월 기준 EU 역내 설탕 가격은 t당 780달러인데 반해 수출가격은 400달러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 각국이 자국산업 보호를 위해 설탕에 높은 관세를 매기는 것은 당연하다. 미국과 일본의 설탕 관세율은 125%,314%나 된다. EU조차도 수출된 물량이 역내 시장에 되돌아오는 것을 막기 위해 260%의 높은 관세 장벽을 쌓고 있다.

산업정책적 측면에서 원당과 원유는 유사한 점이 있다. 원유가격이 올라가면 휘발유 가격도 오른다. 마찬가지로 원당 값이 오르면 설탕가격을 올리는 것이 정책순리다.

덤핑으로 수출되는 설탕을 낮은 세율로 수입하는 것은 하책(下策)이다. 단기적으로 설탕가격은 안정되겠지만,제당산업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장치산업 특성상 가동률을 높여야 원가 절감으로 국내가격 안정에 기여하게 된다. 원당가격이 급등락함에도 불구하고 국내 설탕 값이 비교적 안정세를 유지했던 이유는 국내 제당산업이 설탕공급의 완충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완충지대가 사라지면 설탕가격의 변동성은 오히려 커지게 된다.

제당 3사가 과점구조 하에서 과다한 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우려도 기우에 가깝다. 2008년 제당3사의 영업이익률은 6.0%로 제조업 평균(6.6%) 및 음식료기업(6.4%)보다 오히려 낮다. 과점구조 하의 경쟁이 오히려 치열할 수도 있다.

설탕의 관세율 인하가 소비자 물가를 낮출 것이란 기대도 과장된 것이다. 설탕이 소비자 물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할 뿐더러,설령 설탕가격이 인하된다 치더라도 가공식품 가격이 낮아진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1998년 이래 10년간 설탕가격은 추세적으로 낮아졌지만 가공식품가격은 추세적으로 인상된 것이 한국의 경험이다.

EU는 WTO 제재로 보조금 축소를 통해 설탕의 생산량 및 덤핑수출을 2013년까지 단계적으로 감축하게 되어 있다. 또한 EU와 FTA 협상을 하면서 설탕관세를 40%에서 30%로 낮추는 단계별 감축일정을 확정한 바 있다. 따라서'시장 정상화'가 이뤄진 후 세율인하를 논의해도 전혀 늦지 않다. 지금은 세율인하를 논할 상황이 아니다. 세율인하 추진은 부지불식간에 '친(親)서민'과 'MB물가'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이를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정책은 "과학에 기초한 예술"이다. 정책은 맹목을 배격한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ㆍ경제학/시장경제제도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