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소련 붕괴 직전인 1990년 3억명에 달했던 러시아어 사용 인구가 2025년이면 반토막 날 전망이다"(뉴욕타임스),"러시아의 올 2분기 성장률이 -10.9%(전년 대비)로 브릭스(BRICs) 국가 중 꼴찌를 기록했다. 브릭스는 조만간 러시아(R)가 빠진 빅스(BICs)가 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파이낸셜타임스)

한때 맹주로 군림하던 러시아가 '이빨 빠진 호랑이'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막강한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연 7%대의 고속성장을 구가하던 러시아 경제가 휘청거리면서 브릭스 대열에서 탈락할 위기에 처한 데다,러시아어의 위상도 흔들리고 있다. 원자재에 치우친 취약한 경제구조로 인해 러시아는 중국 브라질 인도 등 다른 브릭스 경제가 바닥을 치고 회복세로 돌아선 가운데서도 여전히 침체의 수렁에 빠져 있는 상태다.

◆천대받는 러시아어


러시아어는 러시아의 경제 발전과 함께 옛 소련 국가 국민들에게 '러시안 드림'의 보증수표로 통했다. 옛 소련 붕괴 후에도 독립국가연합(CIS)을 중심으로 공용어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러시아 경제가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러시아어가 찬밥 신세가 됐다. 실업률이 8%대로 치솟으면서 CIS 출신 국민들의 러시아 행렬이 줄어든 탓이다.

러시아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옛 소련 국가들의 독립 움직임도 러시아어 쇠락에 불을 지폈다. 친서방 성향의 빅토르 유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우크라이나어를 배우는 것"이라며 정부 및 학교에서 우크라이나어를 공식어로 사용하라고 지침을 내렸다. 중앙아시아의 옛 소련 연방국이었던 타지키스탄도 최근 러시아와 거리를 두겠다며 모든 정부 문서를 타지크어로만 쓰겠다고 공언했다. 또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등 발틱 국가들은 자국어 습득을 시민권 획득의 의무 조항으로 달았다. 러시아와 분쟁 중인 그루지야는 TV 채널과 라디오의 러시아어 방송을 전면 금지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러시아어가 세계 공용어 10위권은 유지하겠지만 지위는 크게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알렉세이 보론초프 상트페테르부르크 게르첸사범대 사회학과장은 "러시아어의 몰락은 경제사회적 측면에서 러시아의 고립을 재촉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 회복엔 상당 시간 걸려

러시아의 2분기 경제성장률은 중국(7.9%) 인도(6.1%) 브라질(1.9%) 등 나머지 브릭스 경제가 일제히 플러스를 기록한 것과 대조된다. 1995년 이후 사상 최악이었던 1분기(-9.8%)보다 더욱 악화된 -10.9%로 추락하며 체면을 구겼다. 러시아 경제개발부는 올해 성장률이 -8.3%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같은 부진은 원자재 산업이 경제의 60%를 차지하는 취약한 경제구조에 뿌리를 두고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에 따른 석유 · 가스 수요 감소 및 가격 하락으로 올 1~5월 러시아의 원자재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47.4% 급감했다. 최근 경기 회복 기대감으로 원자재 가격 하락세가 둔화됐지만 에너지값 상승이 러시아 경기 회복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금융권 부실과 재정적자도 러시아 경제의 발목을 잡는 걸림돌이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연말까지 은행 부실채권 비율이 10~20%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말 러시아 정부는 2200억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시행했지만 대부분 증시로 흘러들어갔을 뿐 기업들은 별 혜택을 못 봤다. 또 올 6월 기업과 은행권 구제를 위해 730억달러의 추가 부양책을 실시했지만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 와중에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6.8%로 치솟았다. 루블화 가치는 지난해 달러당 평균 24.81루블에서 14일 30.89루블로 약 24% 떨어지면서 외채 부담을 짓누르고 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푸틴 전 대통령의 권력 다툼에 따른 정국 불안 가능성도 러시아 경제 전망을 어둡게 한다. 최근 푸틴은 대통령직 복귀 의사를 밝혔다.

김미희 기자 iciic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