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카자흐스탄 경제 중심지 알마티의 중심가에 있는 센터크레디트은행(BCC · Bank Center Credit) 바티르 지점.점심 시간인데도 지점을 찾은 고객들로 창구는 북적이고 있었다. 정기예금에 목돈을 맡기러 왔다는 아이르 알루소씨(여 · 28)는 "BCC는 안전하고 튼튼해 믿음이 간다"며 "올해부터 거래 은행을 BCC로 바꿨다"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카자흐스탄의 대형 은행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국민은행이 투자한 BCC는 새로운 성장 기회를 맞고 있다. 올 들어 고객 예수금이 오히려 눈에 띄게 늘어나 자산 순위가 작년 6위에서 5위로 한 단계 뛰었다. 말리크 누그마노프 바티르 지점장은 "국민은행이 투자한 이후 고객들의 BCC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져 신규 고객들이 많이 늘었다"며 "거래 기업도 국민은행이 투자하기 전보다 2~3배가량 증가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카자흐스탄 역시 글로벌 금융위기로 올해 초만 해도 국가 부도 가능성까지 거론될 정도였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금융시스템을 안정시키기 위해 BTA 할릭 카즈코메르츠방크(KKB) 얼라이언스 등 자국 내 1~4위 은행에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최대 은행인 BTA 지분 75%를 인수했고 할릭과 KKB의 지분을 각각 21% 사들여 사실상 국유화했다.

국민은행이 인수한 BCC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설도 나왔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6억3400만달러를 투자해 BCC 지분 30.5%를 매입한 상태였다. 2011년까지 19.6%를 추가로 사들여 경영권을 확보하기로 BCC 측과 계약을 맺었는데 여기에 들어가는 돈은 줄잡아 1조원에 달했다. 국내 금융 역사상 최대 규모 해외 인수 · 합병(M&A)이 허무하게 끝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국내 금융계에서 쏟아졌다.

국민은행의 생각은 달랐다. 공적자금을 받은 4대 은행은 해외 차입을 통한 외형 키우기에 몰두하다 유동성 위기에 직면했지만 BCC는 내부를 꼼꼼히 들여다보니 내용이 크게 달랐다. 예컨대 4대 은행이 올해 상환해야 할 해외 채무는 110억달러가 넘었지만 BCC가 갚아야 하는 외채는 내년까지 상환해야 할 금액을 포함해도 1억달러에 못 미쳤다. 16억달러 이상 유동자산을 보유해 유동비율도 충분했다. 카자흐스탄 내 상위 5개 은행의 6월 말 무수익 여신비율이 17.9%인 데 비해 BCC는 4.7%에 불과했다.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은 20%로 국민은행(13.65%)보다 높았다.

국민은행은 BCC 지분을 포기하기보다는 월드뱅크 소속 국제금융공사(IFC)를 설득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국민은행이 인수해야 할 지분 19.6% 중 10%를 IFC에 넘기는 방식으로 공동 투자자로 만드는 데 결국 성공했다. 티무르 이시무라토프 BCC 국제본부장은 "IFC의 투자로 BCC와 카자흐스탄 금융시장은 안전성과 신뢰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고 국민은행은 2억달러의 투자 부담을 줄였다"고 설명했다.

국민은행은 BCC 주가 하락으로 현재 65% 정도 손실을 본 상태다. 국민은행은 그러나 주가로 '투자 실패'를 규정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향후 2~3년 내 BCC를 카자흐스탄 최대 은행으로 키우고 이를 바탕으로 중앙아시아와 러시아 동유럽에 본격 진출하는 카드로 삼는다는 전략적 가치를 고려해야 하고,금융위기가 지나가면 주가는 회복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국민은행은 위험관리 체계와 정보기술(IT) 시스템,고객관리 역량 등을 BCC에 전수하는 한편 신용카드와 여신심사 실무 전문가를 현지에 파견,금융 노하우를 심고 있다.

강정원 국민은행장은 "국내 은행들이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 진출해 성공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며 "빠른 속도로 경제가 회복하고 있는 아시아는 문화적 동질성이 강하기 때문에 한국 은행들이 충분히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강 행장은 "앞으로 아시아 금융시장에 대한 공략을 한층 강화할 방침"이라면서 "진정한 해외 진출을 하려면 현지법인이나 지점 설립보다는 M&A가 가장 효율적인 전략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알마티(카자흐스탄)=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

◆카자흐스탄=중앙아시아의 최대 자원 부국으로 성장 잠재력이 높다. 석유 398억배럴(세계 9위),천연가스 3조㎥(11위)가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크롬 매장량(2억9000만t)은 세계 1위다. 우라늄 매장량은 2위,아연은 3위로 세계 주요국이 군침을 삼키기에 충분하다. 땅 크기도 세계 9위다. 중앙아시아 5개국 중 1인당 국민소득이 가장 높다. 카자흐스탄에서 경영 · 경제 분야 최고 명문대학으로 꼽히는 키멥대 이상훈 경영대학장은 "카자흐스탄은 '웨이 투 유라시아(유럽과 아시아의 통행 중심)'라는 지정학적 특성과 자원이 풍부한 정치 · 경제학적 가치가 부각돼 자원개발뿐 아니라 금융 분야에서도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며 "지금이야말로 한국 은행들이 카자흐스탄에 진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