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9월은 잔인한 달이다. 11일 세계무역센터(WTC)를 붕괴시킨 9 · 11 테러(2001년)가 있었다면 15일에는 금융시장 붕괴를 촉발시킨 리먼 브러더스 파산 신청(2008년)이 있었다. 한국경제신문은 12일 딘 베이커 미국 경제정책연구소(CEPR) 소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리먼 파산 1년을 평가해봤다. 베이커 소장은 2002년 주택시장의 거품을 경고한 뒤 미국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이코노미스트다.

▼부시 정부가 마음만 먹었으면 리먼을 살릴 수 있었고 금융위기를 초래하지 않았을 것이란 지적이 많다.

"리먼 파산이 신용공황 등 위기로 이어졌지만 위기의 본질은 금융사들의 과도한 차입과 악성 부실자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리먼이 망하지 않았더라도 다른 경로를 통해 위기가 불거졌을 것이다. 전후 최악의 경기 침체를 피할 수 없었으며 금융사들의 부실 문제도 심각한 수준에 달했을 것이다. 리먼 파산이 금융위기의 촉매 역할을 한 것이긴 하지만 본질적인 요인으로 볼 수 없다. "

▼월가가 1년 새 바뀌었다고 보는가.

"거의 바뀌지 않았다. 앞으로도 예전 관행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모기지(부동산담보대출) 관련 증권에는 투자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단기간에 큰 돈을 벌기 위한 새 형태의 투기적 거래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골드만삭스가 앞장 서서 큰 돈을 벌면 다른 금융사가 뒤따라가는 형태가 될 것이다. "

▼하지만 금융시장이 많이 안정됐다는 평가가 많은데.

"정부의 지급 보증이 없으면 아직도 지급 불능에 빠져 있을 은행들이 적지 않다. 정부가 씨티그룹의 악성 자산 3000억달러를 보증해주지 않았으면 어떻게 됐겠는가. 앞으로 1년6개월 동안 지방은행 파산이 잇따를 것이다. 만기가 3~5년인 상업용 모기지가 가장 큰 위험 요인이다. 만기 연장이 안 되면 건설업체들은 공사를 계속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상업용 모기지 자산이 있는 지방은행들은 부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언제라도 지급 불능에 빠질 수 있다. "

▼오바마 정부가 광범위한 금융 개혁을 추진하고 있지 않은가.

"월가가 이긴 게임이다. 오바마 정부가 처음부터 약한 금융개혁안을 제시한 데다 이마저도 의회 협상 과정에서 더 약해질 것이다. 파생상품 문제만 해도 그렇다. 표준화된 상품을 만들어 청산소에서 거래하도록 하면 문제가 풀리겠는가. 표준화된 파생상품에도 허점이 있다. 월가 금융사들은 그런 허점을 이용할 수 있다. 따라서 투기성이 농후한 위험한 거래는 따로 구별해 감독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금융감독 개혁도 중요하지만 종국에는 법을 집행하는 감독기관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

▼금융위기의 책임이 감독 소홀에 있었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과잉 차입과 투기적 거래를 막을 수 있는 충분한 권한이 있었다. 그런데도 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이나 벤 버냉키 FRB 의장은 항상 괜찮다고 말했다. 버냉키 의장은 위기가 불거진 후 제대로 역할을 했지만 그 전 업무 수행 능력은 최악이었다. "

▼주택시장 전망은.

"지역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집값은 더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30년 만기 모기지 금리가 연 4.25% 수준이고 주택 최초 구입자가 8000달러 세금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면 주택 구입을 고려해볼 만하다. 이 정도 조건이면 앞으로 집값이 5~10% 떨어져도 큰 손해를 보지 않을 것이다. "

▼미국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데.

"매우 약한 회복세를 보일 것이다. 기업들이 재고를 너무 줄인 탓에 3,4분기는 비교적 탄력적인 성장이 가능할 수 있지만 내년 1,2분기는 불투명하다. 특히 경기부양 효과가 줄면 성장세가 위축될 수 있다. 경기부양 효과는 내년 1,2분기까지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그 효과는 급감해 더 이상 경기부양에 의한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일자리는 계속 줄고 실질 가계소득도 줄어들 가능성이 적지 않다. 소비 위축도 문제다. "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