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상징 건물..한국업체 진출 신호탄

전 세계 금융산업의 중심지인 뉴욕의 월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건물을 한국업체가 인수했다.

고가의 최고층 건물이 밀집한 맨해튼 월가에서 대형건물을 한국업체가 인수한 것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며, 이는 금융위기가 1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월가 부동산 시장에 대한 한국업체의 진출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해석돼 주목된다.

우리금융그룹의 우리프라이빗에퀴티와 금호종금, 영우&어소시에이츠 등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은 9일 저녁(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월가 인근에 소재한 AIG 건물에서 이 건물의 인수계약 완료를 자축하는 축하행사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우리프라이빗에퀴티의 이인영 사장과 금호종금 김종대 사장, 영우&어소시에이츠의 우영식 사장 등 컨소시엄 관계자뿐 아니라 AIG의 프레드릭 운첼 부동산관리담당 사장, 세계무역센터(WTC) 재건사업을 추진 중인 미국 부동산 시장의 거물 래리 실버스타인 등도 참석했다.

실버스타인은 이날 행사에서 인사말을 통해 "이 건물은 훌륭한 입지조건에 아름다운 건축양식으로 지어져 투자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면서 "성공적인 인수를 축하한다"고 말했다.

금호종금 컨소시엄은 지난 4월 이 건물의 매각공고가 나오자 투자자를 모집한 뒤 17개국 30개 컨소시엄이 참여한 경쟁입찰을 뚫고 인수자로 선정됐고 지난달 말 인수 대금을 완납, 인수절차를 마무리했다.

인수 가격은 1억5천만달러로, 미국 부동산 시장의 호황기에 8억∼10억달러를 호가했던 점이나 감정 가격이 4억달러로 평가된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수준이다.

컨소시엄이 이처럼 저렴한 가격에 건물을 인수할 수 있었던 것은 금융위기로 유동성 위기에 처한 AIG그룹이 미국 정부로부터 공적자금을 지원받는 대신 본사 건물 매각 등 자구노력을 이행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AIG는 공적자금 상환과 자구노력 차원에서 본사 사옥을 매각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기 때문에 현지 부동산 시장이 바닥을 걷는 시점에서 '울며 겨자먹기'로 싼값에 팔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특히 입찰과정에서 중국과 일본 등 4개 업체들이 금호종금 컨소시엄보다 높은 가격으로 응찰했지만 금호종금 컨소시엄은 가격외 조건에서 이들을 물리치고 인수자로 선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건물은 맨해튼 월가 바로 옆 파인스트리트 70번지에 위치한 66층짜리 빌딩으로, 부속건물과 고가통로로 연결돼 있다.

1932년 건설된 고딕양식 첨탑을 가진 이 건물은 WTC 건설 전까지 맨해튼 다운타운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으며, AIG가 1970년대부터 매입해 본사 건물로 사용해왔다.

이 건물은 현지 부동산 시장에서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및 크라이슬러 빌딩과 함께 맨해튼 다운타운을 상징하는 3대 건물로 꼽혀왔다.

AIG는 임대 계약에 따라 내년까지 이 건물을 사용할 예정이며, 금호종금 컨소시엄은 AIG의 임대기간 만료 후 고층부를 주거용 아파트나 콘도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영우&어소시에이츠의 우영식 사장은 "계약의 최종 이행에 대한 신뢰도나 인수자금의 출처 등의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아무도 이런 저렴한 가격에 팔릴 것으로 생각하지 못한 상황에서 남보다 한발 먼저 움직인 것이 비결"이라고 말했다.

(뉴욕연합뉴스) 김지훈 특파원 hoon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