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볼보 S80 페이스 리프트 모델을 시승했다. 다른 것보다 눈길을 끈 것은 내비게이션이었다. 대시보드 위에서 스르륵 솟아오르는 팝업식 내비게이션에는 지니 맵과 교통상황을 한눈에 보여주는 TPEG(실시간 교통정보) 기능이 준비돼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입차 내비게이션은 한국화한 경우가 많지 않아 급조된 제품을 장착한다는 인식이 강했는데,그런 불신을 씻은 듯이 없애준 셈이다.

내비게이션의 보급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 정도다. 신호대기 중인 차들 가운데 10대 중 8대 이상은 애프터 마켓용이든,순정 제품이든 내비게이션을 달고 있기 때문이다.

내비게이션의 역사를 되짚어 올라가 보면 1998년 즈음 현대차 쏘나타의 모젠을 떠올리게 된다. 당시 삼성자동차의 SM5가 버드 뷰 내비게이션을 장착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애프터 마켓용 내비게이션은 이보다 한 해 빠른 1997년 현대전자에서 내놓은 게 시초다. 신차 출시와 함께 장착되는 내비게이션이 한발짝 나아갈 때 애프터 마켓용은 열 걸음 전진할 정도로 성장세가 놀라울 정도였다.

내비게이션이 처음 등장했을 당시 순정용은 대형차에만 옵션으로 탑재됐다. 가격도 300만원에 육박했다. 훨씬 저렴하다는 애프터 마켓용 역시 150만원 안팎이었다.

2000년대 초반 애프터 마켓용 내비게이션 가격(디스플레이 일체형)이 40만~50만원까지 떨어졌다. 거치식으로 장착하는 이 제품들은 성능과 가격 면에서 순정 제품을 능가했다. 신속한 업데이트로 자동차의 필수품으로 자리잡았다.

포화상태까지 달했던 내비게이션 시장은 2005년 디지털방송(DMB) 출현과 동시에 또다시 유망 산업 대열에 들어섰다. 길찾기 정보만으로는 부족했던 사람들이 TV 시청을 위해 기꺼이 주머니를 열었던 것이다.

이때만 해도 애프터 마켓용 내비게이션의 기능이나 디자인이 순정 제품보다 월등했다. 비용 면에서도 절반 이상 저렴했다.

하지만 순정 내비게이션의 반격이 시작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07년 현대차가 쏘나타 트랜스폼의 내비게이션 패키지를 105만원에 내놓았고,이후 GM대우도 토스카에 TPEG를 장착한 내비게이션을 더 싼 가격에 선보였다. 르노삼성 역시 뉴 SM3에 100만원대 내비게이션을 장착했다.

7인치 모니터와 화려한 디스플레이를 자랑해온 애프터 마켓용 내비게이션,음성인식 등 다양한 신기술로 맹렬하게 공격하고 있는 순정 내비게이션.이처럼 애프터 마켓용과 순정 내비게이션은 서로 영향을 주면서 발전하고 있다. 소비자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대표적인 선의의 경쟁이 아닐까 싶다.

모터매거진 편집장 kino2002@motor-ma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