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부채의 위험성 논쟁이 일고 있다. 한국은행은 가계 부채의 급증이 위기의 불씨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는 반면 노무라증권은 가계 부채가 실제보다 과다 계상된 만큼 위기 초래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은 집계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가계 부채(가계 대출에 외상 구매를 더한 가계 신용의 개념)는 697조원.호황 국면 직전인 2004년 말의 474조원과 비교하면 47%나 늘었다. 한은은 소득과 비교했을 때 이 같은 가계 부채 증가세가 위험 수위에 올랐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국민들이 소비 등에 실제 쓸 수 있는 소득을 가리키는 국민총처분 가능 소득은 지난 상반기 502조원.상반기를 기준으로 했을 때 소득 대비 가계 부채의 비율은 1.4배에 이른다. 이는 2004년 1.15배에서 2005년 1.20배,2006년 1.26배,2007년 1.29배,2008년 1.32배 등으로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한은 관계자는 "소득 대비 가계 부채가 많다 보니 소비가 늘어날 수 없는 데다 자칫 집값이 하락세로 돌아서는 날에는 가계와 금융회사의 동시 부실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한은은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금리를 낮춰 대출자들의 이자 부담을 줄여줬지만 이 기간 중 오히려 대출을 더 늘리는 바람에 가계의 채무 조정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 향후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걱정하고 있다.

노무라증권은 9일 '한국의 가계부채:진실과 오해'라는 보고서를 통해 한은의 우려를 반박했다. 이 증권사의 권영선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의 소득 대비 가계 부채가 매우 높지만 한국적 상황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노무라증권은 한국의 자영업자 비중이 전체 취업자의 3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2배에 이르는데 자영업자가 경영상 목적으로 주택을 담보로 빚을 내는 경우에도 주택담보대출로 잡힌다고 분석했다. 또 자영업자는 근로소득자에 비해 소득을 줄여서 신고하게 마련이어서 소득이 실제보다 적게 잡힐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소득 대비 부채가 과다 계상됐을 수 있다는 얘기다.

노무라증권은 이 때문에 한국에서는 가계 부채가 많아도 전국적 주택시장 버블이 없으며 버블에 따른 과잉 소비나 경상수지 적자 등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파악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가계대출의 현황 및 평가'라는 보고서에서 가계 부채와 함께 가계 금융자산도 늘어나 금융자산 대비 부채 비율이 50%를 밑돌아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진단했다. 더불어 최근 가계 대출은 중산층 이상에 몰린 것이어서 채무 상환 능력은 양호한 편이라고 분석했다. 김준경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다만 "가계 소득은 저조하고 가계 총자산에서 부동산 자산의 비중이 높아 경기 침체에 대한 국내 가계의 신축적 대응이 어려운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