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같은 굴지의 대기업 임원이라면 모를까,대한민국에서 월급만 갖고 부자됐다는 건 '교과서만 공부해 수석합격했다'는 것과 같은 뻔한 거짓말이다. 대출 이자에 아이들 학원비까지 내고 나면 매달 통장 잔고는 바닥이다. 저축은커녕 마이너스 통장에 손벌리지 않으면 다행이다.

마이너스 인생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늘도 김 과장,이 대리는 머리를 굴린다. 주식 한방으로 인생역전을 꾀할까,아니면 집을 갈아타 한번에 팔자를 고칠까. 이리저리 고민하지만 결단을 내리지 못한 채 마음만 바쁜 게 김 과장,이 대리다. 누구처럼 '에지(edge) 있게' 재테크를 하고 싶지만 회사일 하기도 버거운 판이다. 증시가 살아나고 집값이 들썩인다는 소식이 들려올수록 김 과장,이 대리는 마음만 부산해진다.

배짱이 운명을 갈랐다

대기업에 다니는 김모 차장(43)은 "대구 촌놈이 부인 잘 둬서 서울 강남에 집을 마련했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다분히 시샘 어린 말이다. 김 차장이 결혼한 것은 1997년.서울 동대문구 휘경동에 전셋집을 겨우 마련할 정도로 빠듯했다. 결혼 이후에도 마찬가지.직장 생활에 쫓기다보니 재테크는 상상도 못했다.

김 차장 부인은 달랐다. 서울 강남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피아노 레슨을 하는 부인은 '재테크의 귀신'들인 학부모들로부터 들은 얘기를 흘리지 않았다. 결혼 후 2년 만인 1999년 서초구 방배동 85㎡ (25평)미분양 아파트를 2억5000만원에 잡았다. 외환위기 직후인데다 대출금도 상당해 부담스럽긴 했다. 주저하는 김 차장을 설득해 부인이 덜컥 계약을 해버렸다.

모험은 적중했다. 방배동 아파트 가격은 5년 뒤인 2004년 두배로 뛰었다. 김 차장 부인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서초동과 개포동 아파트를 넘나들었다. 그 결과 지금은 시가 15억원에 육박하는 강남 아파트를 마련했다.

반면 김 차장의 회사 동료인 유모 차장은 지금도 '대전족'(대치동 전세족)이다. 비슷한 시기에 결혼해 전세로 출발했지만 모험을 주저한 탓이다. 서울 상계동에 집을 장만했지만,아이들 교육을 위해 강남 전세족을 자처했다. 유 차장은 "이때다 싶으면 질렀어야 했는데 너무 소심했던 것 같다"고 씁쓸해 했다.

발품만이 믿을 수 있다

금융회사 직원인 이모 과장(36)은 주말마다 서울 투어를 한다. 한 지역을 정해 근처 부동산 중개업소를 샅샅이 훑는 게 일이다. 집중 공략 대상은 역세권의 소형 아파트와 원룸 건물.어느 정도 대출을 받으면 전세를 끼고 사는 건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취미는 '부동산 둘러 보기'로 변했고,특기는 '부동산값 후려치기'가 됐다.

대출금도 꽤 된다. 그렇지만 이 과장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발품을 파는 자만이 재테크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다. 그는 "젊은 나이에 하고 싶은 일 접어두고 돈을 모아두는 게 노후생활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며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월급쟁이가 어떻게 인생역전을 꾀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외국계 컨설팅 회사에 다니는 김인태씨(39)는 마라톤과 주식을 파고 들어 성공한 케이스다. 5년 전 주식에서 1억5000만원을 날린 뒤 분한 마음을 삭이기 위해 시작한 것이 마라톤.김씨는 마라톤을 하면서 주식투자와 마라톤 레이스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죽어라 연습해야 완주할 수 있고,긴 호흡으로 임해야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랬다. 그 때부터 퇴근 후 매일 세 시간 이상 주식 공부를 했다. 특히 주가가 낮은 종목을 찾는 데 시간을 할애했다. 철저한 분석을 통해 김씨는 올 들어서만 원금 8000만원을 2억원으로 불렸다.

회사가 좋든지,운이라도 좋아야지

'아무리 노력해도 머리 좋은 사람 못 따라간다'지만,공부나 재테크에서 지존은 뭐니뭐니해도 '운 좋은 사람'이다. 대박과 쪽박도 대부분 본인의 능력이 아니라 다분히 '운'에 따라 판가름나는 게 현실이다.

중견기업에서 일하는 김모 과장(39)은 직장따라 강남갔다가 재미를 봤다. 8년 전 본사가 서울 강북에서 강남으로 옮길 때 성북동에서 반포동으로 이사를 했다. 투자 차원도 아니었고 단순히 출퇴근 때 길에 버리는 시간이 아까워서였다. 처음엔 전세로 입성했지만 급매물을 잡아 근처 20평대 아파트를 장만했다. 결국 김 과장은 8년 만에 수억원의 돈과 어마어마한 시간을 함께 벌 수 있었다.

2001년부터 5년간 해외 주재원으로 일했던 대기업의 정모 차장(43)은 회사에 감사하며 살고 있다. 주재원으로 나갈 당시 서울 목동에 30평대 집을 샀다. 그 사이 집값이 천정부지로 올라 평생 월급으로 모을 수 없는 돈을 만지게 됐다. 정 차장은 "불안한 마음에 집을 사두고 나간 게 주효했다"며 "국내에만 있었으면 애들 교육에 급급해 전셋집만 전전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박은 무슨?…용돈벌이라도 해야지

직장생활 7년차인 임모 과장(32).국내 모 화장품 회사에 다니는 그는 싱글 수준의 골프실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회사에선 아무도 그의 실력을 아는 사람이 없다. 한번도 임 과장이 골프 얘기를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거의 매주 필드에 나가지만,30만원 안팎에 달하는 비용을 생활비로 충당한 적이 한번도 없다. 주식투자를 통해 번 돈으로 해결하는 까닭이다.

그는 "주식에 운용하는 돈은 3000만원 정도"라며 "목표 수익률을 낮게 잡고 수익이 나면 미련없이 팔아 골프치는 데 쓴다"고 말했다. "직장생활하면서 주식프로들과 대결하려다 쪽박을 찬 동료들을 봤었는데,그보다는 용돈이나 벌자는 마음으로 주식에 투자하니 오히려 편하다"는 게 임 과장의 설명이다.

돈은 나만 비켜간다

재테크에서 남들만큼 못 벌어 분개하는 직장인들이 적지 않지만,오히려 재수가 옴붙어 길바닥에 나앉지 않은 것에 감사해야 할 경우가 더 많다. 은행원인 장모 차장(47)은 '돈의 흐름을 피해가는 데' 일가견이 있다. 10년 가까이 살던 서울 상계동 집을 팔아 경기도 분당으로 옮긴 때가 2006년. 그러자 20년 가까이 꿈쩍도 않던 상계동 집값은 1년 만에 두 배로 치솟았다. 반대로 직전까지 '고고씽'이던 분당 집값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불행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올초 분당 생활을 정리하고 서울로 복귀하자마자 분당이 다시 르네상스 장세로 돌입한 것.

대기업에 다니는 홍모 차장(44)은 자녀 조기 유학 때문에 손해를 봐야 했다. 홍 차장은 3년 전 부인과 초등학생인 딸을 필리핀으로 보냈다. 당시 해외 부동산 취득이 허용됐다는 얘기를 듣고 마닐라 인근에 1억8000만원을 들여 방 2개짜리 아파트를 마련했다.

그런데 웬 걸.부인과 딸이 올해 봄 귀국했지만 필리핀 아파트는 임대도 되지 않았다. 팔려고 했지만 집값은 구입가의 절반 이하로 폭락했다. 홍 차장은 "처음에는 홧병까지 났지만 그냥 필리핀에 휴가용 콘도 하나 마련했다고 스스로 위로하고 있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정인설/이관우/이정호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