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미 밀리고 있다. " 윤영각 삼정KPMG그룹 대표는 위기 이후 국가 전략 면에서 한국은 중국 일본에 한참 뒤져 있다고 지적했다. 경쟁국들이 위기를 기회로 삼아 뛰고 있는데 한국 정부와 기업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답답하다는 표정이었다.

▼위기 이후 한국 경제가 도약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전략은.

"국민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2만달러에서 3만~4만달러로 올리려면 이미 포화 상태인 국내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해외에서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 2만달러까지는 수출로 왔지만 그 이상은 불가능하다. 에너지,자원,선진금융 기법,네트워크,핵심 기술 등을 가진 기업을 적극적으로 인수해야 하고 중소기업들도 세계로 뻗어 나가야 한다. "

▼해외 기업 인수가 도약의 계기라고 보는 이유는.

"우리나라 인구를 5000만명으로 한정시켜 놓고 볼 때 1인당 GDP가 3만달러가 되려면 전체 GDP는 1조5000억달러가 돼야 한다. 지금보다 58%를 늘려야 한다는 계산이다. 4만달러가 되려면 2배 이상으로 늘어나야 한다. 하지만 국내 산업을 돌아보면 그 정도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내수와 수출로 다져진 기존 성장 방식에 그치지 않고 다른 시장을 적극 공략하는 전략으로 넘어가야 한다. "

▼지금을 100년 만의 기회라고 했는데.

"가치평가를 해보면 지금 수많은 해외 기업들이 20~30% 낮은 가격에 M&A 시장에 나와 있다. 50% 이상 저평가된 회사도 많다. 우리 생애에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낚아채지 못하면 국가 경쟁에서 밀려날 것이다. 아니 이미 밀리고 있다. 중국이 싹쓸이 하고 있고 일본도 만만치 않다. "

▼중국이 어느 정도이기에 '싹쓸이'라고 하나.

"중국 정부 사람을 만난 적이 있는데 쇼크를 받았다. 우리가 상상도 못할 일을 하고 있다. 2조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액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 정부가 마스터플랜을 갖고 있다. 그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구성할지,어느 기관이 어떤 해외 기업을,언제 인수할지 등을 상부에서 일일이 짜고 있다. 그렇게 치밀하게 접근하고 있는데 우리는 대체 뭐하고 있나. 정부가 앞장서야 하고 공기업들도 나서야 한다. 외환보유액 2300억달러 가운데 200억달러라도 풀어서 글로벌 M&A 시장에 나가야 한다. "

▼외환보유액은 비상시에 써야 하는데.

"비상자금 성격이니까 안정적 투자를 해야 한다는 주장은 기본적으로 맞지만 누가 그걸 다 쓰자고 하느냐.다변화하자는 얘기이고 5~10%만이라도 투자하자는 것이다. 2300억달러를 가지고 있으면서 연 1~2%짜리에 투자하고 있는 게 제대로 된 외환관리인가. 1998년 MIT 대학기금 운영자를 만난 적이 있다. 내가 '대학기금은 보수적인 곳인데 왜 굳이 위험한 한국에 투자하려 하느냐'고 했더니 '싸게 살 수 있는데 왜 위험하다고 하느냐'고 반문하더라.기금 중에 적어도 5~10%는 수익을 키우기 위한 투자를 해야 한다. "

▼민간 기업도 M&A에 나서야 한다고 보나.

"마이크로소프트나 인텔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어마어마한 순이익을 내는 회사들이지만 이익금으로 펀드를 만들어서 M&A에 열심이다. 향후 필요한 기술을 자기들이 100%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혼자 힘으로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일 뿐이다. "

▼기업들이 M&A에 적극적이지 못한 이유는.

"기회를 선점할 수 있는 정보 수집이 다른 국가들보다 늦다. 우리가 정보를 먼저 알았다고 하더라도 과감하게 낚아채는 단호함과 실력이 부족하다. 내부 역량이 부족하다면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기회를 찾아내야 한다. "

윤 회장(56)은 경기고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후 시카고대와 듀크대에서 경영학과 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휴렛팩커드와 회계법인,법무법인 등에서 일하다 1991년 국내로 돌아와 삼정컨설팅그룹을 세웠다. KPMG와 제휴,삼정KPMG 그룹으로 재출범시켜 회계 · 컨설팅 분야에서 규모를 키워가고 있다.

김인식/사진=양윤모 기자 sskis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