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신 여성인 저한테 맞는 금융사가 한 군데도 없어요", "전 고정관념에 맞춰서 대우받는 게 싫어요. 애 취급받을 때는 특히나요. "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2008년 40여개국 1만2000명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심층 설문조사에서 쏟아져 나온 말들이다. 이 조사에서 많은 여성들은 기업들로부터 푸대접을 받고 있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의 44%는 기업과의 상대에서 자신이 거의 힘이 없다고 답했을 정도다.

하지만 조사 결과 아이로니컬하게도 가정에서 돈줄을 쥐고 어떤 제품을 살지 결정하는 사람은 여성들이었다. 가구의 94%를 비롯 △휴가 92% △주택 91% △승용차 60% △가전제품 51% 등 여성이 구매권을 갖고 있었다. 가구나 주택 매입시 열에 아홉 가구는 여성이 구매를 결정한다는 얘기다. 여성의 이 같은 '구매 파워'는 현재 미국의 가계 소비 5조9000억달러 가운데 여성이 결정권을 쥐고 지출한 금액이 72.9%인 4조3000억달러에 이른다는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여서 여성 소비 비중이 독일은 70%,영국 66%,일본은 62.5%이다.

'트레이딩 업(Trading-up)' '소비자의 반란(Treasure Hunt)'의 저자인 마이클 실버스타인 BCG 부사장이 "왜 기업들은 세계경제를 움직이고 있는 여성들을 여전히 푸대접하고 있는가"라고 묻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그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최신호(9월호)에서 많은 기업들이 여성들의 구매력과 니즈를 무시하고 있다며 여성들의 마음을 붙잡는 능력이 불황 이후 기업들의 성공 여부를 좌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버스타인 부사장은 먼저 기업들이 신흥시장 공략에는 열을 올리면서도 정작 경제력이 크게 늘어난 여성들은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올해 전 세계에서 여성들이 벌어들인 소득은 13조달러에 달하며 2014년까지 18조달러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는 중국(4조4000억달러)과 인도(1조2000억달러)의 국내총생산(GDP)을 합친 것보다도 두 배 이상 많다.

하지만 기업들의 마케팅 전략은 아직도 남성 편향적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자동차다. 그는 여성들은 자동차의 편의성을 중시하지만 업체들은 스피드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어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도 어린 자녀들을 차에 싣고 학교에 데리고 가는 어머니들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금융사도 여성 고객들을 고압적으로 대하고 금융상품에 대한 이해가 뒤떨어진다고 무시하는 인상을 주고 있다. 실버스타인 부사장은 특히 시간에 쫓기는 고소득 전문직 여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전했다.

이미 의류업체의 경우 여성을 얼마나 이해하느냐가 경영 성패를 좌우하고 있다. 여성들이 선호하는 브랜드 중 하나인 '바나나 리퍼블릭'은 직접 입어볼 필요 없이 옷을 고를 수 있도록 다양한 체형에 맞는 신체 사이즈 표를 제공하고 있다. 여성들이 옷을 살 때마다 "너무 살찐 게 아닌가"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떠올린다는 데 착안해 편안하게 옷을 살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사이즈 세분화는 또 인터넷 쇼핑몰에서 즐겨 옷을 사는 여성들의 라이프 스타일에도 잘 맞아떨어졌다.

실버스타인 부사장은 따라서 여성을 '표적 시장(target market)'으로 삼아 집중하는 기업들이 성공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 최근 '핑크색으로 바꾸기(make it pink)'란 이름으로 철저하게 여성에 맞춘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는 컴퓨터업체 델처럼 점점 더 많은 기업들이 여성의 니즈를 반영할 것으로 예상했다.

조귀동 기자 claymo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