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진단, 출구전략 시기.방법놓고 견해차 드러나

미국의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고위 정책당국자들 사이에 이른바 `출구전략'의 시기와 방법론을 둘러싸고 견해 차이가 노출되고 있다.

금융위기와 경기침체에 대응해 FRB가 지난해말부터 제로금리 정책과 함께 무제한의 통화공급 조치를 취한 이후 경기회복의 신호가 나타나고 있으나 일각에서는 과도하게 풀린 시중 자금이 인플레이션과 또 다른 거품경제를 야기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됨에 따라, 일각에서는 통화 흡수를 위한 출구전략을 동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반면 한편에서는 신중론이 여전히 강한 편이다.

특히 FRB의 통화정책 결정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이사진들 가운데 일부가 적절한 시기에 통화환수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을 폈으나 또 다른 이사들은 경기상황이 여전히 불안한 만큼 현 시점에서 출구전략을 거론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맞서고 있다.

FOMC의 이사인 윌리엄 더들리 뉴욕연방준비은행 총재는 31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경제의 회복양상이 아직은 취약하다고 지적하면서 FRB의 장기물 국채매입 규모를 축소하는 방안을 거론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주장했다.

더들리 총재는 "경제성장의 속도가 매우 빠르지 않은데다 실업률이 매우 높은 상태이기 때문에 경기부양을 위해 취해오고 있는 모든 통화정책들을 당장 거둬들인다는 것은 섣부르다는 것이 개인적인 견해"라고 말했다.

그는 FRB의 장기물 국채매입 규모를 축소하는데 반대할 것인지 여부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으나, 이미 FRB가 시장에장기물 국채매입 규모를 제시한 상태에서 시장의 예상을 깨고 시장에 놀라움을 안겨주는 것은 곤란하다고 밝혀 부정적인 입장을 우회적으로 표시했다.

한편 FOMC 정례회의에서 투표권을 행사하는 이사인 제프리 래커 리치먼드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27일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경제가 안정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FRB가 계획하고 있는 경기부양 조치들을 모두 동원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밝혀 더들리 총재와는 상반된 입장을 나타냈다.

래커 총재는 FRB가 국책 모기지회사들로부터 최대 2천억달러의 채권을 인수하는 한편 이들 기관이 발행한 모기지담보부증권 1조2천500억달러어치를 매입키로 함으로써 은행들이 FRB로부터 자금을 차입할 필요성이 줄어들었다고 지적하면서 이런 상황에서 FRB가 추가로 유동성 공급 계획을 시행할 필요가 있는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래커 총재는 현재 소비자물가가 하락쪽보다는 상승 압력이 더 높다고 지적, 출구전략의 검토해야 할 시기가 도래했음을 시사했다.

앞서 데니스 록하트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현재의 경기진단이 정확하다면 고용시장의 안정 속도와 중기적 관점의 경제성장세가 실망스러울 정도로 더딘 편"이라고 지적, 당분간 경기부양에 초점을 맞춰 통화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처럼 FOMC 회의에서 투표권을 행사하는 통화정책 결정권자들 사이에 미국 경제에 대한 진단과 출구전략의 시행 시기를 놓고 의견이 엇갈림에 따라 다음달 22∼23일로 예정된 FOMC 정례회의에서 일대 격론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FRB의 수뇌부 사이에서 아직은 신중론이 우세하기 때문에 당장 큰 변화가 초래될 것 같지는 않지만, 통화정책 결정권자들 사이에 견해차가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는 FRB의 통화정책에 방향전환이 이뤄질 시기가 무르익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sh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