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 무쏘는 마니아가 많은 차로 유명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당시 무쏘에 장착된 엔진이 세계 최고의 차를 만드는 독일 벤츠가 설계한 엔진이었기 때문이다. 이 엔진에 길들여진 드라이버들에게는 엔진소음이 파워의 상징으로 느껴진다고 할 정도다.

이 얘기는 20세기 자동차 시장의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다름 아닌 엔진기술을 갖고 있는 회사들이다. 벤츠 BMW 도요타 폭스바겐 등이 갖고 있는 핵심 기술은 엔진기술이며 이들은 그 기술로 지금까지도 세계 자동차산업에서 리더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최근 엔진의 시대가 막을 내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아마 몇 년후 쯤에는 자동차 성능이 2차전지(배터리)의 수준에 따라 결정될 수도 있을 것이다. "

국내 최고의 자동차 애널리스트였던 김학주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장의 말이다. 즉 전기자동차 시대가 열리면 자동차의 심장역할을 했던 엔진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배터리가 차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의 자동차와 배터리 산업은 그 어떤 산업에서도 찾아볼수 없었던 기회를 맞게 될 것이라는 말이 곳곳에서 들린다. 우선 휴대폰과 노트북에 들어가는 전지양산을 통해 한국의 배터리산업은 이미 높은 경쟁력을 입증받았다.

이는 삼성SDI가 보쉬와 합작법인을 통해 BMW 납품권을 따냈고 LG화학이 미국 GM 및 현대자동차그룹에 배터리 납품 계약을 맺은 것에서 드러난다. 여기에 현대 · 기아차가 세계적인 불황에도 입지를 넓히며 국내 전지산업의 큰 수요자가 되고 있는 것도 든든한 대목이다. 2000년대 초 도시바가 자동차용 2차전지 개발에 성공했지만 대형 수요처를 못 찾아 사업에서 철수했던 것과 비교하면 말이다.

이런 전망을 실현이라도 하듯 현대 · 기아차 그룹의 종합 부품회사 현대모비스와 LG화학이 합작법인을 설립해 미래형 자동차에 들어가는 배터리를 만들기로 했다는 뉴스는 그래서 더욱 반갑게 들린다. 세계 최고의 소형차 경쟁력을 갖춘 현대 · 기아차그룹과 2차전지 분야의 글로벌 리더인 LG그룹의 만남이 한국의 전기차 '전성시대'로 이어질지 기대가 크다.

산업부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