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LG LCD 교차구매..이종분야 R&D 협력도 본격화

한국 정보기술(IT) 산업의 양축 삼성과 LG가 오랜 논의 끝에 25일 마침내 LCD 패널 교차구매에 합의하고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날 합의는 이 분야에서 세계 정상을 다투는 두 업체간의 교차구매라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의의가 있다.

그간 반도체나 LCD 등 IT 핵심부품에서 한국의 독주를 막기 위해 일본이나 대만업체들은 여러 차례 연합전선을 구축해 한국을 공략해왔지만 우리 업체들의 대응방식은 항상 '각개전투'였던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두 회사의 교차구매 합의는 외부의 적에 공동 대응을 위한 한국업체간 제휴의 효과를 가늠해볼 수 있는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 대기업간 확산하는 상생협력 = 이번 삼성-LG간 교차구매 합의가 아니라도 올해 들어 대기업간 협력은 공동 연구.개발(R&D)을 중심으로 부쩍 늘어나는 추세다.

각 분야에서 세계 정상권에 속하는 국내 기업들끼리 손잡고 신성장산업 분야에서 우위를 선점하려는 것이 주된 목적으로, 정부가 제공하는 R&D 자금이 그 매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지난달 정부가 지원하는 신성장동력 R&D 사업인 '스마트 프로젝트'를 계기로 현대자동차그룹의 현대차와 현대오토넷이 삼성전자와 지능형 차량용 반도체 칩셋 개발에 나서고 현대모비스와 삼성LED가 복합기능 자동차용 LED 전조등을 개발하기로 한 것이 그 사례다.

부품.소재부터 완제품까지 세계 최고의 제조업 경쟁력을 보유한 이웃 일본에서는 그간 분야별 유력업체, 특히 대기업간 협력을 통해 R&D를 추진하는 것이 일반화돼 있다.

자동차 세계 최강 도요타가 전자업체의 강자 파나소닉과 공동 출자한 회사에서 하이브리드 차량용 전지를 공급받는 것이나, 그간 주력차종의 강판에는 일본 철강업체의 강판제품만 사용해온 것이 일본 산업계의 관행을 보여준다.

각 분야 세계 최고의 국내기업간 제휴를 통해 신사업 영역을 장악해가는 것이 오늘날 세계 제조업을 석권한 일본 산업계의 저력인 셈이다.

이에 비해 고속 성장을 해온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저마다 새로운 사업영역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경쟁사업이 늘어난 탓에 협력보다는 소모적 경쟁이 많고 이 때문에 국가단위나 산업구조 측면에서 보면 낭비성 중복투자가 적지 않았던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따라서 아직 경쟁이 첨예하지 않고 개발과 투자가 진행 중인 '미래 먹거리' 분야에서의 협력은 국내 대기업의 새로운 경영전략으로서도 필요가 크다고 볼 수 있다.

◇ 2년 걸린 삼성·LG 합의..상호이익 있어야 지속가능 = 이번 삼성과 LG간 교차구매 MOU 내용을 보면 삼성전자가 LG디스플레이로부터 17인치와 22인치 모니터용 LCD를 구매하고 LG전자는 삼성전자 LCD사업부로부터 22인치 모니터용 패널을 구매하는 게 골자다.

지경부 측은 "MOU에 따라 삼성은 내달부터 LG로부터 17인치와 22인치 모니터용 패널을 월 4만장 구매하게 된다"며 "양사간 거래금액은 모니터용 LCD 패널 수입금액의 10% 수준인 1천억원"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양사간 교차구매 이야기가 본격화된 것은 2007년부터이며, 지난 2년간 교차구매 발표가 몇 차례 있었으나 의미 있는 실행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종분야 R&D 협력이 아닌 경쟁업체간 교차구매가 얼마나 어려운 문제인지를 보여주는 실례다.

무엇보다 정부 주도의 '협력 모양새 갖추기'보다는 협력을 통한 실질적 이익이 있어야 협력의 지속이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삼성이나 LG의 경우 교차구매가 되지 않으면 부족하거나 생산이 되지 않는 LCD 패널 제품을 대만업체로부터 구매하게 되는데 대체로 대만제품이 삼성, LG제품보다 싼 게 현실이다.

각사의 가격정책에 따라 단가의 변동성이 있고 국내에서 공급받을 경우 납기가 빠르다는 장점은 있지만 이 부분이 해결되지 못하면 협력의 장기 지속은 쉽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기술적 차이도 교차구매 확대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지경부는 "양사가 TV 패널 교차구매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지만 전자업계에서는 "양사의 방식이 달라 새로운 패널을 개발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며 애로가 있음을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종수 기자 jski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