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지점장으로 일할 때보다 힘들고 월급도 적지만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보람을 느낍니다. "

이현구 하나희망재단 경영자문위원(57)은 요즘 은행원으로서 제2의 인생을 사는 기분이다. 재단에서 대출받아 창업을 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서다. 이 위원은 "하나희망재단에서 대출받은 사람들은 사업 실패 등으로 좌절한 경험을 갖고 있다"며 "이들이 성공적으로 재기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더할 수 없는 감동을 느낀다"고 말했다.

하나희망재단은 하나은행이 저소득 · 저신용층 대상의 신용대출인 마이크로크레디트 사업을 하기 위해 지난해 9월 설립한 공익재단이다. 연체 경력 등으로 제도권 금융을 이용할 수 없는 이들에게 연 3%의 저금리로 창업자금을 지원한다. 지금까지 166명에게 27억여원을 빌려줬다. 자금을 지원받으려는 사람들이 제출한 신청서를 검토,대상자를 선정하는 작업에서부터 사업이 성공할 수 있게 돕고 대출이 연체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모든 일이 경영자문위원들의 몫이다.

금융인으로서 전문성과 경험이 없으면 이 같은 일을 할 수 없다. 돈을 빌려주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종자돈으로 삼아 자립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희망재단에 근무 중인 7명의 자문위원은 모두 전 · 현직 은행원들로 평균 30년의 근무 경력에 지점장 경력만 10년 이상인 베테랑이다.

윤철원 위원(56)은 "식당에서부터 학원,운수업에 이르기까지 하나희망재단의 대출을 받은 사람들이 하는 사업은 매우 다양하다"며 "수십년간 은행에 근무하면서 체득한 노하우가 없으면 제 역할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권경하 위원(57)은 "재단의 지원을 받은 사람이 개업하면 그곳에 가서 홍보용 전단지도 같이 뿌리고 장사가 잘 안 될 때는 머리를 맞대고 의논한다"며 "내 가족처럼 생각해야만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한 위원은 재단에서 빌린 돈으로 과일가게를 차린 사람을 찾아갔다가 미처 팔리지 않은 과일이 썩어가는 것을 보고 "이건 내가 다 가져갈 테니 손님들 앞에는 싱싱한 과일을 내놓으라"며 몇 상자 분량의 과일을 자기 돈을 주고 사온 적도 있다.

위원들은 최소 한 달에 한 번씩은 지원 대상자를 찾아다닌다. 당초 계획대로 사업이 잘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만약 잘 안 되고 있다면 해결책을 찾아보기 위해서다. 행여나 재단에서 빌린 돈을 엉뚱한 곳에 쓰지는 않는지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이들은 마이크로크레디트의 특성상 지원 대상을 쉽게 늘릴 수 없는 점이 가장 아쉽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은행 지점에서는 직원 1명이 1000건 이상의 대출을 관리하는 반면 마이크로크레디트는 한 사람이 30건 이상 관리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홍원표 재단 상임이사는 "비록 규모는 작지만 마이크로크레디트의 성공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다"며 "하나희망재단이 성공을 거두면 마이크로크레디트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