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바닥을 쳤다는 신호가 늘고 있는 요즘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예전처럼 밤잠을 설치는 것 같아 보이진 않는다.

여전히 1주일에 7일을 일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달 초에는 2년 만에 처음으로 이틀간 휴가를 내고 아들 결혼식에 참석했다.

요즘엔 가끔 집에서 저녁을 먹을 수도 있고 몇 주에 한 번 정도는 야구 경기를 보러 갈 여유도 생겼다.

이번 주 미국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리는 FRB 연례회의에서는 각 지역 연방은행 총재와 경제학자들이 버냉키에게 '승리한 영웅'이라는 찬사를 보낼 것으로 보인다.

아직 경제가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그래도 미국 경제가 극심한 경기침체와 금융위기라는 폭풍우를 뚫고 나온 데는 사실상 버냉키 의장이 '일등공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학자들은 그가 월가 금융회사에 대한 구제금융에서부터 제로금리에 이르기까지 단호하고 과감한 정책적 수단들을 동원해 미국 경제를 대공황 이후 최악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심지어 연준이 주택시장 거품의 위험을 무시했다고 혹독하게 비난해왔던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 같은 사람들도 "그는 이번 경기침체가 대공황과 같은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점을 깨닫고 매우 공격적으로 필요한 조치들을 취했다"고 칭찬했다.

버냉키 의장이 부시 전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공화당 인사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내년 1월 임기만료 때 그를 연임시키지 않는다면 월가와 워싱턴 정가가 깜짝 놀랄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NYT)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백악관이 그의 연임 여부에 대해 함구하고 있으며, 버냉키와 연준은 특정 업체에 대한 구제금융 지원과정과 연준의 권한에 대해 민주. 공화 양당 의원들로부터 정치적 공세를 받고 있다고 20일 지적했다.

백악관의 이런 태도 때문에 일각에서는 버냉키의 후임으로 로런스 서머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등이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다.

민주당 소속인 크리스토퍼 도드 상원 금융위원장 같은 사람은 모기지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연준이 월가의 금융회사들에 밀착해있었다고 비난했고 공화당 인사들은 연준이 이미 너무 많은 권한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NYT는 버냉키 의장이 통화정책을 정상적인 수준으로 되돌릴 이른바 '출구전략'과 금융 감독기구 개편 문제 등 2가지 도전에 직면해 있다면서 특히 앞으로 연준이 시중에 풀린 유동성을 회수해야 하기 때문에 버냉키의 직무는 단지 절반만 완료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뉴욕연합뉴스) 김지훈 특파원 hoon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