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편익 vs 중소상인 생존권..대립 첨예
자율 상생 필요..중소상인도 경쟁력 갖춰라

기업형 슈퍼마켓(SSM: Super Supermarket)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중소 상인들의 생존권 보호를 위해 기업형 슈퍼마켓을 허가제로 바꿔야 한다는 원천적 규제론에서부터 소비자 편익을 먼저 생각해 더 이상 규제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상반된 견해들이 충돌하고 있다.

대형 업체와 중소 상인들이 상생의 길을 찾고 있지만, 이견 때문에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어 앞으로의 추이가 주목된다.

특히 정부가 서민업종인 안경점, 이ㆍ미용점의 진입규제를 푸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어 이번 논란의 해결 방향이 더 큰 의미를 갖게 됐다.

◇ SSM 16배 늘었다..중소상인 위기의식

대기업들이 슈퍼마켓에 처음 진출한 것은 1960년대-1970년대였고 초기에는 동네 상점들과 크게 충돌히지 않았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대형마트 시장이 한계에 봉착하자 대형 유통업체들이 대형마트와 동네 슈퍼마켓 사이의 틈새 시장인 기업형 슈퍼마켓 사업에 뛰어들면서 기업형 슈퍼마켓과 중소 상인들의 갈등이 시작됐다.

2000년 26개였던 기업형 슈퍼마켓은 9년이 흐른 올해 7월 현재 428개로 16배 정도 늘어났다.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롯데슈퍼, GS수퍼마켓에 이어 대형마트 1위 업체인 신세계까지 올해부터 가세해 점포 확충은 가속될 전망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기업형 슈퍼마켓이 본격적으로 여론의 관심거리가 된 데는 불경기와 대형 유통업체의 신규 진출 및 점포 확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 소비자 편익 vs 중소상인 생존권


기업형 슈퍼마켓을 둘러싼 대표적 논란은 소비자 편익이냐, 동네 상인의 생존권 보호냐다.

대형 유통업체들은 기업형 슈퍼마켓이 소비자의 편익을 향상 시킨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기도 파주시의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금촌점을 자주 이용한다는 주부 김 모씨는 "한 번에 모든 것을 다 살 수 있다.

밤 늦게까지 영업하고 신용카드도 사용할 수 있어 편리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자신이 아는 주부 대부분이 동네 가게나 재래시장보다 대기업 슈퍼마켓을 자주 이용한다고 덧붙였다.

중소 상인들은 동네 상인들의 생존권 보호를 강조하고 있다.

인천 부개시장의 상인 김용배 씨는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들어오고서 매출이 30-40% 줄었고 시장 상점 중 올해만 5곳 넘게 폐업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단체인 중소기업중앙회가 전국 54개 기업형 슈퍼마켓 주변의 소상공인 226명을 조사한 결과, 41.2%가 "6개월을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그러나 대형 유통업체들은 자체 조사 결과를 인용, 기업형 슈퍼마켓이 생겨도 주변의 중소 슈퍼마켓 수가 늘어났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중소 상인들은 기업형 슈퍼마켓 때문에 동네 슈퍼마켓과 정육점, 채소가게가 모두 문을 닫으면 소비자의 선택권이 제한된다고 서로 반박하고 있다.

고용 효과, 지역 상권 등 기업형 슈퍼마켓의 경제 효과에 대해서도 양측의 입장은 상반된다.

기업형 슈퍼마켓 규제에 관해서도 중소 상인들은 유럽 선진국들이 규제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대형 유통업체 단체인 체인스토어협회 이승한 회장은 "정부가 직접 규제하는 나라는 없다"고 반박한다.

◇ 갈등 장기화·증폭 우려


중소 상인들은 중소기업 시장에 진입하려는 대기업의 사업 진출을 늦출 수 있는 사업조정 제도를 활용해 기업형 슈퍼마켓의 신규 개점을 막고 있지만, 대형 유통업체들은 극비리에 공사를 하며 신설 점포 개점을 강행하고 있어 양측의 갈등은 증폭되고 있다.

지난 15일 현재 접수된 기업형 슈퍼마켓 관련 사업조정 신청은 총 49건이고 23건에 대해 사업개시 일시정지 권고가 내려졌지만, 개점을 해도 좋다는 결정은 단 1건도 없다.

기업형 슈퍼마켓의 사업조정 권한을 지방자치단체로 넘긴 정부는 기업형 슈퍼마켓 개설 등록제를 확대하고 등록을 신청할 때 지역협력 사업계획을 제출토록 하는 방안을 국회에 제시해 제도적 해법의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현재 국회에는 기업형 슈퍼마켓의 등록제를 허가제로 전환, 영업시간ㆍ입지.품목 제한, 지역경제 기여 의무 부과 등 기업형 슈퍼마켓 규제 관련 법안이 10여개나 제출돼 있다.

이들 법안은 정부안과 함께 9월 정기국회에서 논의될 예정이지만 불안정한 정치 상황과 양측의 첨예한 갈등을 고려할 때 쉽게 해법을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업계의 자율적인 상생 방안 마련도 쉽지 않다.

중소 상인들은 기업형 슈퍼마켓의 허가제, 영업시간·판매품목 제한, 중소 상인을 위한 유통산업발전 기금 조성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대형 유통업체는 난색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 자율적 상생협력 우선..중소상인도 경쟁력 높여라

전문가들은 우선 업계의 자율적인 상생 방안을 마련하고 장기적으로 중소 상인들이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승제 한국유통과학연구소장은 "영세 상인들의 힘이 약하기 때문에 우선은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며 "중소형 업체가 클 수 있도록 정부나 전문가 집단이 도와야 하고 소상인들도 공동 상표, 공동 마케팅 등으로 내부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수 한국유통경제연구소장은 "국가의 개입보다는 업계가 자율적으로 상생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정희 한국유통학회장은 "대형업체들이 시장 논리 뿐만 아니라 사회현실을 고려해 과도한 마케팅을 자제하고 영업시간 제한 등 자체적인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면서도 "중소상인들도 공동점포 등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원목 이화여대 교수는 "경쟁을 통해 소비자들이 가장 유리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정부는 영세상인과 기업형 슈퍼마켓의 게임 규칙이 공평한지를 살피고 대형 유통업체들도 사회적 책임감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이상원 기자 leesa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