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호찌민에서 북동쪽으로 50㎞ 떨어진 빈둥 공단.국내 대형 봉제업체인 세아상역의 1공장에 들어서니 요란한 재봉틀 소리가 가득했다. 일렬로 쭉 늘어서 있는 24개 라인 맨 앞에는 갭(GAP) 리즈(Liz) 올드네이비(Old Navy) 콜스(Kohl's) 등 미국 유명 중 · 고가 의류 브랜드 푯말이 붙어있었다.

라인마다 배치된 30여명의 재봉사를 포함,재단사 검수원 등 65명의 날렵한 손길을 거치면 해당 브랜드의 옷 한벌이 뚝딱 만들어진다. 3개 공장 72개 라인에서 매달 나오는 140만장의 의류는 전량 수출한다.


◆불황에도 일감은 몰려

현재 베트남에 진출한 국내 의류업체는 총 2500여개사(유통 · 무역업체 포함)에 달한다. 이 중 75%가 베트남 남부지역인 호찌민 인근에 몰려있다. 세아상역 등 한국 10대 투자기업의 섬유류 수출은 작년 말 기준으로 베트남 전체 섬유수출의 10.2%를 차지했다.

국내 대형 봉제업체들의 사업 형태는 대부분 한국 중국 등에서 질 좋은 원단을 들여와 해외 유명의류업체의 옷을 만드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이다. 작년 하반기부터 이어진 글로벌 경기침체에도 불구,베트남에 있는 한국 봉제업체들의 일감은 늘고 있다.

해외 고객사들이 부도 위험이 있는 중국 업체의 주문 물량을 한국 업체에 돌리고 있어서다. 문준용 세아상역 베트남 법인장은 "베트남은 인건비 이외에 원부자재 조달을 위한 산업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는 게 장점"이라며 "회사 전체 매출의 11%를 담당하는 베트남 공장의 생산 비중을 높이기 위해 라인 증설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세아상역과 함께 베트남에 진출한 한세실업은 2001년 첫 진출 당시 12개였던 생산라인이 현재 136개까지 늘어났다. 매달 430만장의 봉제 의류를 생산해 미국 등으로 수출하고 있다. 이 회사가 만드는 각종 브랜드의 의류는 미국에서 하루 평균 46만6000장이 판매된다.

◆단순 OEM 넘어 ODM으로

국내 봉제기업들은 고객사의 디자인을 받아 옷을 만드는 OEM 사업 방식의 한계를 넘기 위해 자체 개발한 디자인을 고객사에 제안하고 생산하는 제조자개발생산(ODM) 사업 전환에 힘쓰고 있다. 한세실업은 지난해 뉴욕에 디자인센터를 개설하고 올해부터 일부 의류업체에 회사의 ODM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김철호 한세실업 베트남 법인장은 "OEM업체가 세계적인 의류 메이커에 새로운 디자인 샘플을 제안할 수 있을 정도로 국내 봉제기업들의 기술력이 발전했다"며 "영업마진이 큰 ODM 제품 개발이야말로 국내 봉제업체들이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지름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탈(脫)중국 이전행렬 가속화

중국에서 봉제의류를 생산하던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낮으면서 인력이 우수한 베트남으로 공장을 옮기는 사례가 가속화하고 있다. 한세실업은 작년 12월 인건비 부담이 커진 중국 칭다오 봉제공장을 닫고 베트남에 집중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중견 봉제업체인 대원모직도 최근 중국 내 생산설비 운영을 최대한 줄이는 대신 호찌민 인근에 생산기지를 마련했다.

그러나 베트남 내 인건비도 빠르게 상승해 기업들이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도시마다 차이가 있는 베트남 근로자의 최저임금은 2001년 30~40달러 선에서 80달러 안팎까지 올랐다. 호찌민 인근에 있는 한국 업체들이 베트남 근로자 한명에게 지급하는 월 인건비는 기본 임금과 잔업수당,식대 등 총 140~160달러로 중국 내륙지역과 맞먹는 수준이다. 베트남 정부는 내년 근로자 최저임금을 10%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김기정 누리안 베트남 법인장은 "베트남을 저임금 생산기지라는 관점만으로 봐서는 성공하기 어렵다"며 "우수한 인력을 활용해 품질과 디자인 수준을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인건비 상승에 따른 가격경쟁력 약화를 해결하고 있다"고 말했다.

호찌민=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