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 정당성.처우 적절성 등 남북관계 변수 가능성

북한에 억류된지 136일만인 13일 `자유의 몸'이 된 현대아산 직원 유성진(44)씨의 `입'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북한이 조사기간 일체의 외부인 접견을 허용하지 않은 채 유씨를 억류했기에 그간 유씨가 어디서 어떤 처우를 받았는지, 실제로 그가 북한 실정법을 위반했는지 등은 완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이 때문에 유씨에 대한 북측 조사의 정당성과 처우의 적절성 등에 대한 우리 당국의 조사 결과가 공개될 경우 남북관계에 또 다른 불씨로 작용할 가능성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유씨, 북한법 실제로 위반했나 = 북한이 3월30일 유씨를 체포하면서 공포한 혐의는 체제를 비난했다는 것과 여종업원을 변질.타락시키고 탈북을 책동했다는 것이었다.

이어 북측은 5월1일 개성공단 감독기구인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이하 총국) 대변인을 통해 유씨가 "(북한) 체제를 악의에 차서 헐뜯으면서 공화국의 자주권을 침해하고 해당 법에 저촉되는 엄중한 행위를 감행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때는 여종업원 탈북책동에 대한 언급없이 체제비난 혐의에 강조점을 뒀던 것이다.

이어 총국은 5월15일 대남 통지문에서 유씨에 대해 "현대아산 직원의 모자를 쓰고 들어와 우리를 반대하는 불순한 적대행위를 일삼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되어 조사를 받고 있는 자"라며 사실상 유씨가 현대아산 직원을 가장, 스파이 행위를 했다는 주장을 폈다.

북측은 13일 유씨 신병을 `추방' 형식으로 우리 측에 넘기면서 조사 결과를 낭독했지만 그 내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일단 개성공단 출입.체류와 관련한 남북합의서에 따라 남측 범법 행위자에 대해 할 수 있는 세가지 조치(범칙금.경고.추방) 중 하나인 '추방'을 한 것은 북한 나름대로 유씨의 죄가 인정된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의미다.

하지만 유씨가 자신에게 적용된 혐의를 국내 조사과정에서 인정하지 않을 경우 남북간에 `진실공방'이 빚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현재까지 유씨가 혐의 사실을 인정하는 자술서를 썼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자술서를 썼다한들 조사과정에서 변호인 입회 등 기본권이 보장되지 않았기에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는게 여론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조사기간 유씨 처우도 관심 = 유씨의 진술로 드러날 조사기간 북한 당국의 처우도 민감한 문제다.

숙소, 식사, 생활환경 등에서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날 경우 국민들의 대북 여론 악화로 연결될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개성공단내 북측 기관인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건물에서 체포된 유씨는 그간 개성공단 인근 자남산 여관에 억류돼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유씨의 형인 성권(47)씨는 14일 연합뉴스 기자와의 통화에서 "동생은 개성공단에 있는 한 여관에서 다른 사람과의 접촉없이 136일간 혼자 있었다"고 전했다.

일단 의료진의 1차 검진 소견에 따르면 유씨의 건강에 큰 이상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지만 유씨에게 제공된 식사와 유씨에 대한 감시 수준 등이 어땠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정부 조심스런 대응 = 만약 유씨 관련 조사의 정당성과 처우의 적절성 등이 도마 위에 오를 경우 남북관계의 변수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전망이다.

우선 유씨가 앞으로 국내에서 진행될 조사 과정에서 북측이 거론한 여종업원에 대한 탈북책동, 체제비난, 스파이 행위 등에 대해 전면 부인할 경우 북한이 행한 136일간의 `묻지마 조사'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만약 북한이 유씨에 대한 조사결과를 매체를 통해 공개하고 유씨 또는 우리 당국이 결백 주장으로 맞설 경우 남북관계가 다시 꼬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처우 문제도 마찬가지다.

특히 지난 5일 빌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 방북을 계기로 풀려난 미국인 여기자 2명과 대조를 이룰 경우 파장이 없지 않을 전망이다.

억류기간 유씨는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았던 반면 미국인 여기자들의 경우 조사기간 주북한 스웨덴 대사관을 통해 외부인 접견을 했으며 가족과 전화통화도 하는 등 나름 섬세한 처우를 받은 사실이 알려져있다.

거기에 더해 여기자들의 경우 당사자들도 시인한 불법 입경 등 죄목으로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았음에도 수감되지 않은 채 대기하다 특별사면 형태로 풀려난 바 있어 유씨가 이들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처우를 받은 것으로 드러날 경우 대북 여론 악화로 연결될 수도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800 연안호 선원' 4명이 북에 억류돼 있는 점과 유씨 석방을 기회로 활용해 남북관계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 목소리 등을 감안한 듯 `판도라의 상자'를 다루는 듯한 세심함을 보이고 있다.

천해성 통일부 대변인은 14일 브리핑에서 "관계당국이 유씨의 억류와 관련된 제반사항에 대해서 필요한 사항을 확인할 예정"이라며 "억류사유, 억류중 생활에 대해 궁금해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이러한 확인을 거친 다음에 밝힐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jhc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