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이후 한 달 만에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백용호 국세청장이 선택한 것은 실효성있는 점진적 변화였다. 14일 발표된 '국세행정 변화 방안'에는 '보여주기'에 그칠 것들은 배제되고 현실성있는 것들만 담겼다. '개혁'이 아닌 '변화'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국세청 스스로 바뀌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달라진 전국 세무관서장 회의

백용호 청장은 취임 후 이날 처음으로 전국 세무관서장을 모두 소집했다. 전국 세무관서장회의는 6개 지방국세청과 107개 세무서 간부들은 물론 해외주재관까지 참석하는 국세청의 최대 행사로 통상 1년에 한 번 열린다.

이날 회의는 과거와는 사뭇 달랐다. 직전까지만 해도 세무관서장회의는 국민의례까지만 언론에 노출되는 사실상 비공개 행사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청장 발언은 물론이고 내용 발표까지 모두 공개됐다.

노타이 차림으로 단상에 올라온 백 청장은 먼저 "국세청이 국민들의 기대를 져버려 신뢰를 잃은 데는 특히 간부들의 책임이 크다"고 질타하면서 "이번이 (신뢰 회복을 위한)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내부 사기를 고려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지방국세청 폐지나 조사청 신설 등 그동안 국세청 외부에서 논의된 개혁안은 채택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그는 "외부에서 제기된 조직 개편안이 실효성이 있는지 많이 고민하고 또 여러 곳에서 의견을 구했다"면서 "이제 더 이상 거론하지 않기로 했으니 동요하지 말고 업무에만 전념해달라"고 당부했다.

백 청장은 발언 이후 과거 청장들과 달리 맨 앞줄이 아닌 중간줄에 앉아서 국장들의 발언을 경청했다. 또 회의 참석자 전원과 구내식당에서 가진 점심 때도 청장석이 아닌 일반 자리에서 세무서장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납세자보호관 등 실효성있는 방안 제시




그동안 대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는 통상 5년 정도에 한 번 이뤄졌다. 하지만 매번 불규칙해 기업들 입장에서는 예측 가능성이 없어 준비하기가 쉽지 않았다. 앞으로 4년 주기로 세무조사가 실시되면 기업들의 부담이 줄어들고 투명성도 한층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장급 납세자보호관의 신설은 공급자 위주에서 수요자인 납세자 위주로 국세행정이 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납세자보호관은 납세자 권리가 중대하게 침해되면 세무조사 일시 중지,조사반 교체,직원 징계 요구 등을 요청할 수 있어 강력한 세무조사 견제 권한을 갖게 된다. 납세자보호관,감사관,전산정보관리관 등 3개 요직을 공모를 통해 외부 인사에게 개방한 것도 큰 변화다. 특히 핵심 보직인 감사관을 외부에서 영입하면 감사 · 감찰 기능의 독립성과 투명성이 크게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민간위원 중심의 국세행정위원회와 인사위원회 역시 투명성 향상에 기여할 전망이다. 본청의 기능은 정책기획 위주로,세무서는 현장 밀착형 납세서비스 위주로 바꾸는 것은 슬림화와 효율화를 동시에 추구하겠다는 뜻이다. 본청 납세지원국과 법무심사국은 폐지되고 그 대신 징세 · 법무기능을 담당하는 징세법무국이 새로 만들어진다.

백 청장은 "제도 개혁은 위기 극복의 출발이긴 하지만 신뢰 회복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며 "무엇보다 실천하는 우리 스스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