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뭔가가 자꾸 죄어오는 느낌이다. "

중국에 진출한 한 외자기업 관계자의 말이다. 호주 광산업체 리오틴토 직원의 간첩 혐의 사건,노키아 딜러들의 집단소송,세무조사 강화 등 외국 기업을 둘러싼 심상치 않은 움직임 때문이다. 특히 리오틴토나 노키아 사건 등은 견제와 경고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으로 해석되면서 중국 정부가 외자기업 길들이기에 본격 나선 게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다.

◆노키아 딜러들의 소송

중국 내 280개 노키아 휴대폰 판매업체들은 최근 이 회사를 불공정거래 혐의로 고발했다. 이들은 노키아가 가격독점을 통해 탈세를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키아와 대리상들 간 불화는 가격결정권을 누가 갖느냐에서 비롯됐다. 노키아는 대리상들이 덤핑 등으로 회사의 가격 정책을 흔들고 있다는 입장인 반면 대리상들은 본사가 휴대폰 판매가를 통제하며 이익을 통째로 가져간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업계에선 휴대폰 시장 점유율 40%에 육박하는 노키아를 견제하기 위한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노키아에 대한 고발이 중국 내에서 3세대(3G) 휴대폰 시장이 열리는 것과 때를 함께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현재의 시장 구도대로라면 일반 휴대폰에 이어 3G 휴대폰에서도 중국 업체들의 고전이 예상된다. 따라서 업계 1위인 노키아를 누르는 동시에 외자기업들을 위축시켜 중국 토종업체들의 입지를 넓히려는 의도가 깔린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정식 구속된 리오틴토 직원

중국 정부는 12일 세계 3위 철광석업체인 리오틴토의 중국 주재원 4명을 정식 구속했다. 국가기밀을 탐지,중국에 6년간 1020억달러의 손실을 입힌 혐의다. 중국 정부는 하지만 이들이 정보를 입수해 어느 곳에 팔았다거나 하는 구체적인 정황을 제시하진 않았다. 중국에선 철광석 수입업체인 철강회사들이 대부분 국영기업이고,따라서 기업 정책은 국가의 정책과 일치한다. 기업 관련 정보를 입수한 것도 국가기밀을 빼낸 것이라고 주장하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중국 상무부 푸즈잉 부부장(차관)은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리오틴토 스파이 사건은 공정경쟁 환경을 조성하려는 중국 정부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중국의 투자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외자 유치의 질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로이터통신은 "국가기밀의 범위와 범죄행위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며 "외자기업들의 통상적인 경영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고 전했다. 사실 중국에선 정부가 공식 발표하지 않은 것은 모두 국가기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통제가 심하다. 최근 지난 2분기 성장률이 정부 발표 전에 언론에 흘러나오자 통계국에 대한 대대적인 감찰이 이뤄졌을 정도다. 한 외자기업 관계자는 "정보 유통이 차단된 중국의 특성상 정책 방향을 탐지하기 위해 중국 관리나 업계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동향을 파악하는 게 회사의 중요한 일 중 하나인데 이것도 경우에 따라선 간첩죄로 걸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세무조사도 강화

중국 진출 외자기업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세무조사다. 통상 외자기업은 자국 본사에서 수입한 부품가격(이전가격)에 따라 이익 규모가 달라진다. 부품을 비싸게 사면 본사에 많은 돈을 보내는 대신 해외 지사는 해당국에 세금을 덜 내게 된다. 중국 정부는 최근 외자기업의 이전가격과 세무 관련 조사를 강화하라는 통지문을 각 세무관청에 보냈다. 세무공무원 수를 대폭 늘렸다는 소문도 나돈다.

한 외국 기업 관계자는 "경기부양으로 중국 정부도 재정적자에 비상이 걸린 만큼 세금 징수를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외자기업이 중요 타깃이 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이전가격 등의 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밝혔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